내 고향 분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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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분묘
  • 보은신문
  • 승인 1999.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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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식(보은지산, 충청북도 문화진흥구강)
가끔은 후배들로부터 고향에는 왜 가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은 슬퍼지고 싶어서 간다고 대답하였다. 슬퍼졌다가 배우고 돌아 오면 기분이 좋아 진다고 대다하였다. 고향에 가면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잇고, 산 사람과 망자를 동시에 만나 대화를 할 수 있다.

대추나무 연걸리듯 한 인연의 소중함을 확인하게 되고, 사악한 기운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것 같아 시간만 나면 나는 고향엘간다. 고향에 가면 높고 낮은 동산마다 분묘가 많다. 고향분들의 무덤을 지날 때 마다 나는 가의(賈誼)라는 시인의 '조굴원(早屈原)'이 떠오른다.

용렬한 것들이 뚜렷이 높이 앉아
참소와 아첨으로 마음대로 휘어젖고
성현님네들 곧고 바른 선비는
거꾸로 세워져 초야에 묻혀 사네

또 중국 봉건시대의 시인이었던 소환의 셋째 수 '독벌의 집'도 떠오른다. 이백은 어리석게도 책략을 몰라서 두 번이나 모함을 받아 귀양가던 중 늑막염으로 주었고, 두보는 우유부단한 햄릿형으로 인생을 구차하게 살다가 부패한 쇠고기와 술을 먹고 식중독으로 죽었으나, 소환은 무언실천가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장부답게 살다가 죽은 시인이었다. 소환과 두보, 이 두사람은 남달리 의협심이 강했지만, 소환이 두보와 다른 중요한 점은 봉건사회의 갖가지 제도와 모순에 항거하였다는 점이다.

한 여인이 베를 짜지 못하면
만 사내가 추위를 타고
한 사내가 뜻을 얻지 못하면
온 세상 길을 가기 어려운데…
우리는 깃발을 올려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시와 언행이 일치했던 시인들의 족적을 따라,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주민을 위하는 일인가를 성찰해 왔다. 노자(老子) 오천언(五千言)중의 제 61장 겸덕편을 보면 '서로가 다 소원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큰 나라가 모름지기 아래에 처져야 한다(夫兩者객 得所欲大者宜夏爲)'라고 했다.

윗사람이 아래사람을 대할 때 지켜야 할 명언이라고 생각해 왔다. 고향에 가면 수많은 분묘들이 이런 타이름을 내게 들려준다 그래서 나는 고향엘 자주 가게 되고, 갈 때 마다 훈계를 듣고 돌아 오면 어려웠던 일도 잘 풀린다.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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