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우리는 어디에 서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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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우리는 어디에 서있는가
  • 보은신문
  • 승인 1999.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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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춘(보은죽전, 고려인삼제품공사 회장)
어느 조그만 마을에 오랫동안 주인없이 버려진 황무지가 있었다. 늘 가난하게 살면서도 우직하게도 일 열심히 하는 한 농부가 그 버려진땅이 아까워 몇해에 걸쳐 돌을 줍고, 잡목을 캐고, 거름을 주고 하여 드디어 씨앗을 넣기 시작하였다. 가을 추수기를 맞았다. 풍성하게 익어가고 있는 곡식이며, 채소며, 쓰라린 인고의 결실을 보게된 그 농부의 가슴은 감격으로 벅차 있었고, 이웃들도 큰 부럼움과 함께 농부의 성공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날 그땅의 진짜 주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땅은 본래 내땅이요, 그러니 내땅에서 자란 이곡식과 채소는 모두 내것이요"라고 주장했다.

급기야 그 땅주인이라는 사람과 농부는 다툼이 붙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매일 만나 서로가 "이것은 내것이다"라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싸움으로 일관하다가 그 가을이 다 가버렸고, 결국 두 사람의 타협없는 싸움끝에 추수를 기다리던 모든 곡식과 채소는 썩고 시들고 매말라 버리고 말았다. 최근 전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여의도 바닥에서 우리에 출전권을 얻어나아간 술한 인걸들의 닭싸움같은 작태를 보고 있노라면 이 이야기가 더욱 실감나게 떠오르게 된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건지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근사하게 의관을 갖춘 이들이 속이 다 썩은 상류사회 여인네 몇사람의 거짓말 경연대회를 열어 놓고 저마다 목청을 돋구고 마치 내고향 잠실바닥에서 뛰어놀던 병정놀이를 보는건지 삼류 신파조의 코메디를 보고 있는건지, 한심하다기 보다 분노 같은 것을 누를 길이 없다.

과연 저들에게 이나라의 운명을 맡겨도 되는건지. 아무것도 거두는것 없이 정말 촌각을 다투는 화급한 현안들은 처삼촌 벌초 하듯, 몇초안에 도매금으로 거수 처리 해버리고, 한치의 양보는 커녕, 한조각의 정의감 도덕성 마져도 팽개쳐버린체 티격태격 패싸움의 난장판으로 금쪽같은 시간을 허송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양호우환(養虎憂患)을 겪는것 같은 마음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있는가! 20세기라는 야구경기의 종점 9회말, 투아웃의 마운드에 서있음을 알아야 한다. 온겨례의 피나는 인고와 노력으로 이제 겨우 메이져리그의 출전티켓을 따냈고 세계선수들과의 냉혹한 국제리그의 글로벌게임 속에서 필사적인 홈인의 열망을 불태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회 도서관, 위원회관에 불빛이 흐르고 있는한 영구은 융성한다" 영국시민은 그들을 신뢰한다. 자전거에 서류뭉치와 노트북을 실은채 진바지 차림으로 의사당을 오가는 그리고 시민 앞에 진지하게 귀기울이고 있는 그나라의 선량들의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오만과 박덕으로 일관된 요란한 빈수레 노릇으로 국력만 소모하고 있는 우리의 그것과는 너무도 머나먼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모쪼록 파란만장 했던 한세기의 종점에 서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길 바라고 싶다. 진정 우리 모두는 역사적 민족적 공동운명체 임을 명심히야 한다.

보라! 어려운 이웃 수재민을 돕자고 신문에도 방송에도 이름없이 천원짜리 한통화가 수십억에 이르기까지 수백만의 따뜻한 손길이 전화기를 두드리고 있는 그 마음들, 이것이 우리 한국의 참 마음이요, 참모습이다. 내땅 네땅이 아니다. 익은 곡식은 거두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어느 누구의 쌀뒤주에 들어가든… 세기말 그리고 9회말, 승리를 지키기위한 투수의 심정으로 강속의 결정국를 던질 채비를 해야한다. 새로이 열리는 한세기 마이너리그의 삼류그룹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우리 함께 비장한 결의를 새롭게 할때다.

비정하리 만큼 각박한 새세기의 게임에서 승리의 영광을 쟁취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아들과 그 아들의 아들들이 한세기를 너도 당당히 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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