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유를 가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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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를 가지려고
  • 보은신문
  • 승인 1999.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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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식(보은지산, 충청북도문화진흥국장)
속리산은 그 산이름부터가 운치가 잇따. 시인 임백호가 속리산에 들어가서 중용 8백번을 읽은 뒤에 문든 속리산의 산이름을 가지고 지은 기발한 한시가 전해온다.
도불원인인원도(道不遠人人遠道)
산비이속속리산(山非李俗俗離山)

즉 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건마는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은 속세를 떠난 것이 아니건마는 속세가 산을 떠났다는 것이다. 사람이 도를 멀리하듯이 세속이 산을 멀리하는 것인지, 산은 언제나 어머니 품속처럼 인간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보내고 있다. 이시는 ①도와 인간과의 관계 ②산과 세속과의 관계가 서로 잘 비유되고 있다. 인간은 모름지기 위대한 자연 앞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어찌 산과 속이 따로일까마는 당시의 세상이 뒤숭숭하여 이것을 비꼬느라고 읊은 것이다.

과연 임백호 시인의 재기넘치는 한수시이다. 보은은 누구나 산수님(山水心)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은혜로운 땅이다. 그래서 고향가는 길은 언제나 비속(非俗) 또는 탈속(脫俗)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여 삶의 여유를 준다. 마음이 느긋해지고 평화로워진다. 나는 주말이면 고향엘 간다. 자동차 안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여러가지 생각에 젖는다. 지난 번에는 조선 철종 때의 시인 황오(黃五)의 오언절구를 떠올리기도 하였다. 불확실성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몽미(夢迷)를 깨우는 시로서는 손꼽히는 시이다.

오가유백견(吾家有白犬)
견객부지폐(見客不知吠)
홍도화하수(紅桃花下睡)
화락견수재(花落犬鬚在)

내 집에 흰 개 한마리가 있는데
손님을 보고도 짖을 줄을 모른다
붉은 복숭아꽃 그늘에 누어 잘들었는데
꽃잎이 떨어져 개 수염에 놓여 있다

이 얼마나 그림같은 시인가 설사 단원(檀園)과 오원(吾園)인들 이 시의 진경을 그림으로 담을 수 있겠는가. 이시는 느긋한 삶의 여유를 준다. 현대인은 누구나 바쁘다고 아우성이다. 항상 생활에 좇겨 전전긍긍하는 현대인, 그리하여 마침내 제 자신도 용납하지 못하는 현대인, 아무리 세상이 바삐 돌아가고 인심이 점점 각박해져가도 이 시를 조용히 읊조리면 내마음은 편안해진다.

'사람이 길을 가는데는 한 자 너비 이상을 밟지 못한다. 큰길을 갈 적에는 흔들림이 없으나, 외나무다리를 건널 적에는 실족을 하기 쉽다. 이것은 마음에 여유가 없는 탓이다' 라고 안씨가훈(安氏家訓)에는 적혀 있다. 우리 모두 여유를 갖자.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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