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을 감싸주는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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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을 감싸주는 미덕
  • 보은신문
  • 승인 1999.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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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식(충청북도문화진흥국장, 보은 지산)
'흐르는 물을 마시며 목숨의 근원을 잊지 말라'는 옛 성현의 타이름이나, '하늘과 생겨나면서 제일 먼저 태어난 말이 어머니이다'는 말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봄이면 제비처럼 돌아오는 나그네새였고, 가을되면 기러기처럼 날아가는 일엽신(一葉身)이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 삶의 질이 나아지고 일생생활이 바빠지더라도 인간의 귀향 본능은 목숨과 같은 것으로 천지인 삼재와 부모자 삼덕을 인정하는 한 그 근본을 잊을 수 없다.

'높은 하늘에 해와 달이 발고, 두터운 땅에 초목은 자란다'는 말은 한늘과 땅이 초목은 자란다'는 말은 한늘과 땅의 후덕함만을 말한 것이 아니고 어버이의 은혜를 칭송한 말로 여겨진다. 30여 년 간 고향을 떠나, 위태로운 낭떠러지같은 금세기를 살아오면서 나는 저 중국의 초나라 굴원이라는 사람의 '어부'라는 시를 생각하며 고달픈 타향살이를 스스로 위무해 왔다.

창랑지수청혜(滄浪之水淸兮)
가이탁오영(可以濯五纓)
창랑지수탁혜(滄浪之水濁兮)
가이탁오족(可以濯五足)
창랑의 물이 맑을 때라면
내 갓끈을 씻으러 들어가고
창랑의 물이 흐릴 때라면
내 발이나 씻으러 들어가겠네

창랑은 중국 한수의 하류인데, 여기서 '창랑의 물이 맑을 때라면'의 뜻은 밝은 세상, 곧도(진리)가 행해지는 세상이 되면 의관을 정제하고 조정에 나가 충성을 다하겠다는 뜻이고, '창랑의 물이 흐릴 때라면'의 뜻은 무도한 세상, 즉 세상이 어지러우면 관직을 버리고 숨어 살되 발이나 씻으며 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굴원이 추방당한 후 날마다 시름에 젖어 초라한 몰골로 강상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몸을 상하고 있을 때 천택에서 어떤 어부를 만났는데 그 어부와 주고 받은 내용이 이 '어부'라는 시이다.

세상을 피하며 몸을 숨기고 강가에서 흔연히 고기를 낚으며 혼자 즐기는 어부가, 상심해 있는 굴원을 보자 빙그레 웃으며 넌지시 나무라는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누군가는 말했다. 고향에서 태어나서 고향을 지키며 고향산천에 묻힌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월조소남지(越鳥巢南支) 호마의북풍(胡馬依北風) 월조는 제 고향인 남쪽 가지에 집을 짓고, 호마도 제 고향에서 불어오는 북풍에 의지하여 달린다고 한다.

하물며 사람임에랴! 고향사람들끼리 설령 허물이 있을 때 서로를 감싸주는 미덕도 다수구초심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번 주말에는 만사 제쳐놓고 흰구름 한 자락을 앞세워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다.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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