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 김정 정신 올곧은 보은의 얼과 뿌리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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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 김정 정신 올곧은 보은의 얼과 뿌리로 승화”
  • 박진수 기자
  • 승인 2013.07.25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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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싣는 순서
1. 이상세계의 학문적 소양과 꿈을 키워준 보은 땅
2. 도덕적 학문을 현실로 이끈 실천운동가 김정
3. 향약과 미신타파로 사회 개혁운동의 선구자
4. 충암 김정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5. 고향을 빛낸 충암 김정선생 선양을 위한 노력

고향을 빛낸 역사인물 충암 김정은 조선시대 현실정치 타개를 위한 이상정치의 선구자로 조선전기 조광조와 기묘사화를 일으켜 새로운 개혁정치에 앞장 섰던 인물이다. 충암 김정의 생애와 업적을 중심으로 그가 남긴 학문을 비롯 역사적 흔적을 조명하고 보은지역의 역사.문화적 자긍심과 정신문화의 계승,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2006년 철거되기전 석천암의 전경
충암의 흔적, 다시 세워질 석천암
보은읍 성족리 배니마을에 있었던 문화재급이면서도 당국의 무관심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방치되었던 석천암이 마침내 철거되고 말았다. 70년에 발간된 ‘보은군지’ 정사편에 의하면 “보은읍 강신리 북쪽에 있으니 배니(白忍)산 아래이다. 충암 김선생이 학문을 강마하던 장소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석천암은 기묘명현이신 충암 김정 선생이 공부하였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이 석천암이 자리한 곳은 지역 사람들은 흔히 ‘강당’ 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옛날 유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하며 “백번 참는다” 는 뜻으로 “백인”을 교훈으로 삼았음으로 마을 이름이 “백인”이 “배니” 라고 변하게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계속하여 서당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한말 개화기에 김기찬이 사립 광명학교를 설립 운영하기도 하였다. 당시 이 학교도 1920년대에 공립으로 흡수되었으며 하지만 석천암에 설립한 광명학교는 인가를 받지 못하고 폐교되었으나 뜻 있는 유지들에 의하여 계속하여 2세 교육을 실시하였음을 현재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는 사진을 통하여 또는 그곳에서 수학하였다는 7~80년대 인사들의 증언으로 학당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광복이후 1946년 종곡국민학교가 설립 인가되자 석천암은 임시교사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니 종곡초등학교의 모태가 된 건물이다.
철거된 석천암은 전면 4칸 옆면 2칸의 목조 기와집 팔작지붕으로 좌, 우 1칸은 온돌방을 배치하고 중심부 2칸은 마루방을 둔 구조로 창건연대는 충암이 공부하였음으로 충암의 생존기(1488~1521)를 감안하여 5백년전 건물을 관리하고 있는 경주김씨 문중과 등기부에 토지소유자로 등재된 유모씨 후손간에 소유권 분쟁이 야기되었고 소송 끝에 경주 김씨 문중이 패소하여 2006년 8월 석천암도 철거되고 말았다.
석천암이 갖고 있는 조선시대 지방의 유일한 서당 건물이라는 문화재 가치를 인정하여 존치를 원하는 일부 인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억원을 호가하는 토지대금을 마련할 수 없어 지난 2006년 8월 8일 유서깃든 석천암은 철거되기 시작하였으며 철거도중 대들보 아래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어 이 건물의 연혁이 알려져 더욱 아쉬움을 주고 있다.
이 석천암은 조선초기에 경주 김씨 문중에서 자제교육을 위하여 건축한 서당으로 선조때 누 밑에 들어와 사는 전의 이씨 자제들도 배웠다고 볼 수 있다. 그후 1710년(숙종35)에 이정승의 현손으로 스승인 우암 송시열이 기사환국으로 사사되자 고향으로 돌아온 첨중추 이점이 1711년 석천암에 들어와 자경시를 붙혀놓고 후진을 기르기 시작하였음으로 김씨 이씨 양성이라고 한 것이다.
이 때가 석천암 이건 200년전으로 실로 이 건물이 조선초기에 창건된 보은군내 최초의 서당이었음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으며 이와 같은 기록은 조선후기의 우리 보은의 학자로 어암리 백송을 식재한 탁계 김상진이 지은 이점의 행장에 있다.
이제 석천암은 기존의 장소에서 찰거되어 다행하게도 문화재에 대한 관심 있는 몇 사람들과 마을의 노력으로 후에 다시 복원을 전제로 철거가 아닌 해체형식으로 헐어 부재를 보관하고 있다. 석천암은 행정기관의 지원으로 복원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 지난 5월 24일 개최된 충암 김정 선생 학술세미나 모습
지역주민을 비롯 경주김씨 관계자들이 모여 충암 김정 선생에 대한 선양사업을 논의하고 있다.
충암은 보은의 올곧은 얼과 뿌리
보은은 조선전기 충암 김정 뿐만아니라 대곡 성운이 일찍 성리학을 뿌리 내리고 호서 최초로 상현서원이 건립된 지역일 뿐 아니라 이상수, 박문호로 이어지는 충북지역 마지막 성리학의 맥을 이어온 고장이다.
충북발전연구원 충북학연구소 김양식 소장은 “보은의 역사인물선양사업은 올곧은 보은의 얼과 뿌리를 찾아내 그것을 정립하고 구현하는 것을 비전으로 설정함 필요성이 있다” 며 “보은의 얼과 뿌리가 일상 생활문화 속에 녹아들어 군민의 삶의 가치를 보다 풍요롭게 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지역 정체성 확립과 새로운 보은의 지역가치가 발현되도록 비전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고 주장하고 있다.
또 김 소장은 지역정신 가치의 제고와 정체성 확립 및 지역의 얼과 뿌리를 계승 발전시키는데 역사적인 인물을 발굴하여 선양하는 사업 만큼 효과적인 사업이 없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지역 차원의 역사인물선양사업은 추진되어야 한다. 아울러 충암 김정선생에 대한 학술세미나, 인물평전, 만화등을 제작해 선양사업은 학술적 고증과 가치 발굴작업이 필요하며 기념관, 표지석, 충암 테마거리등 김정선생에 대한 기억과 기념공간 조성등이 필요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충암 김정선생기념사업회 구성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선양사업 추진체를 확보해야 한다.

 

충암 김정 선양사업 이제 시작이다
다행히도 지역의 문인단체와 보은문화원을 중심으로 충암 김정선생에 대한 선양사업의 첫 삽을 뜨고 있다. 제1회 충암 김정문화제를 개최해 학술세미나, 청소년 백일장, 김정선생의 시화전시회등이 열리고 있다.
지난 5월 개최된 제1회 충암 김정문화제를 통해 김정선생이 지역정신을 발굴할 수 있는 가치가 인정되어 지속추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지속추진을 위한 준비위원회 구성등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 6월 제1회 충암 김정문화제를 기획한 한국문인협회 보은지부 구장서 지부장은 “충암 김정선생은 역사적으로 훌룡한 정치가 였음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 분의 문인으로의 작품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며 “김정문화제를 통해 지역의 얼과 뿌리를 찾는 문인정신을 되새기고자 한다” 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김정문화제를 준비하면서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를 중심으로 관련 문중 관계자 및 종곡초등학교 동문회, 지역주민 등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들이 모여 충암 김정선생에 대한 선양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특히 본보의 5회에 걸친 기획취재와 보도로 충암 김정선생이 지역 정체성과 얼.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인물임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그동안 빈약했던 김정선생에 대한 전국 곳곳에 산재된 충암 김정선생의 유적지, 유물에 대한 컨텐츠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따라서 보은군의 정체성 확립과 지역정신을 새롭게 재정립할 수 있고 군민들과 함께 창의적인 인문선양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끝>

기획취재팀/박진수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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