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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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3.03.14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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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가에 흐르던 따스한 햇볕이 산등성이에 내려앉더니 봄의 소리가 들려 왔다. 아직 언 땅이 다 풀리지는 않았어도 그제 내린 빗줄기를 타고 왔는지 봄의 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것을 보면 벌써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겨우내 거실에 두었던 연산홍 화분은 어느새 꽃을 붉게 피워 놓았고 햇살은 방안을 엿보고 있어 창문을 열고 싶어지니 말이다.
아내가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하고 나더니 그 화분을 안방 화장대 위에 가져다 놓고는 창문 커튼도 분홍색 것으로 바꾸었다. 지은 지 오래 된 집이라서 커튼 하나 바꾼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드리워진 커튼 사이로 방안을 엿보고 있는 햇살은 연산홍 꽃과 어우러져 노을빛처럼 방안을 가득 채워 주고 있으니 그 빛깔로 봄은 벌써 내게 와 있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뜰 앞에 상사화가 싹을 조금 내밀고 밖을 기웃거린다. 아마도 정말 봄이 왔는지 살펴보고 있는 모양이다.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매화라면 이곳에 제일 먼저 싹을 틔워 봄을 알리는 것은 상사화라 할 수 있는데 우리 집에도 이 상사화가 몇 포기 있어 봄이 오는 것을 제일 먼저 알려준다. 상사화라고 하면 흔히들 석산이라고 하는 꽃무릇을 생각하는데 이 꽃무릇과 상사화는 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꽃무릇은 초가을에 꽃을 먼저 피우고 그 꽃이 진 다음에 잎이 돋아 겨울을 나는데 비해 지금 싹을 내밀고 있는 상사화는 이루지 못한 사랑을 빨리 만나고 싶어서인지 봄기운이 느껴지면 곧바로 싹을 내미는데 그 싹은 봄내 왕성한 잎으로 자라서 기운이 넘치다가도 초여름쯤이면 잎이 사그라져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그만인가 싶다가도 8월 중순이 되면 다시 50여 센티 정도의 외줄기 꽃대가 올라와 백합 모양의 분홍빛 꽃을 피운다. 이렇듯 잎이 먼저 나와서 사그라지고 백 일 쯤 지난 다음에야 다시 꽃이 핌으로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하여 꽃 이름을 상사화 하는데 이런 전설이 딸려 있다. 어느 마을에 금슬 좋은 부부가 늦도록 자녀가 없어 소원하던 중 딸을 낳아 잘 길러 처녀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딸은 절을 찾아가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위해 백 일 동안 탐 돌이 기도를 하게 되었다. 이 때 스님 하나가 그 처녀를 사모하게 되었는데 속세를 떠난 몸이라서 어쩔 수 없이 혼자서만 애를 태우다가 처녀가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자 스님은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죽게 되었고 그 무덤에 핀 꽃이 상사화인데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꽃말도 “이룰 수 없 사랑”이란다, 그 많은 꽃말 중에 왜 하필이면 이룰 수 없는 사랑일까? 마음을 저리게 하는 말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면 당사자들의 마음의 상처야 오죽 하련만 남들도 그 사랑에 연민하며 동정하고 때로는 공감하는 것도 어쩌면 그들에게도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옛날 황진이를 짝사랑 하여 상사병으로 죽은 총각의 상여가 황진이 집 앞에 이르러 가지 못하다가 황진이가 준 저고리 하나를 안고 갔다는 이야기에 연민하는 것도 상사화의 꽃말이 주는 의미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 보다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재미없는 이야기로는 첫사랑과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평생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이란다. 물론 본인들이야 이 세상에서의 가장 큰 축복으로 알고 그 행복에 감사 하겠지만 객관적인 남에게는 무관심이나 시샘 때문인지는 몰라도 별로 재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하니 이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즐겨 보는 연속방송극이나 영화와 소설, 그리고 노래들도 행복으로 시작하여 행복으로 끝나는 이야기 보다는 홍도와 같이 사랑에 속고 돈에 울면서 어떤 이유와 오해등으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내가 학창시절에 읽어 본 세계 명작이라는 책들 속에도 로미오와 쥬리엣의 비련이나 베르테르의 사랑이 그랳고 카츄샤의 실연이 그랳고 마르그리트 고오체가 죽는 순간까지도 영혼을 다하여 주고 간 슬픈 사랑도 그랳다. 그리고 어쩌다 솔베이지 노래를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된다. 이 밖에도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주제로 한 명작들이 많이 있지만 만일 이들의 사랑이 행복하고 아름답게 끝맺음 되었다면 과연 이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남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때로는 그 사랑의 이야기들로 눈물을 흘릴 수 있고 그 사랑의 이야기들로 마음 아파하고 연민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도 상사화의 꽃만큼이나 더 여리고 순수 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제 상사화에게 물어 보아야겠다. 언제 네 사랑을 이룰 수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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