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 쏟아지는 뜨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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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쏟아지는 뜨락에서
  • 보은신문
  • 승인 1999.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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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자(농업기술센터 생활개선 담당)
오랫만에 뚝실을 걷다보니 노랗게 핀 민들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올들어 냉이국을 한번도 끓여 먹지 않았는데 하얀 냉이꽃도, 작은 많은 풀꽃들이 둑길가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추위를 잘 못견뎌 아직 속내의를 꼭꼭 껴 입고 다녔는데 시간의 흐름속에 계절은 시나브로 우리들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내게 지난 겨울은 너무도 잔인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중에 어쩌면 가장 힘들었던 나날들이었다고나 할까?

설득하는 말로 시작하여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들을 남발했고, 미안한 마음으로 출발하여 이해하는 마음보다는 원망의 마음이 깊어졌다. 그리고 난 역력히 보았다. 인간의 욕망는 끝이 없다는 것을… 지치고 황폐한 가슴을 치유하기 위해 여행을 몇번이나 다녀왔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새벽녘, 겨울바다 수평선 끝자락에서 빨갛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평온한 마음으로 정녕 남에게 상처와 피해주는 일은 하지 말자고 기원과 다짐도 했다.

그런 어둔 늪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을때 어느새 봄바람은 살그머니 내귀를 간지르고 침착해 있던 감상을 솔솔 일깨우고 있다. 그래 이 봄날을 우울하게 보낼 필요는 없다.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픔쯤으로, 성숙을 향한 과정쯤으로 생각하고 어두움을 훌훌 벗어 버렸다. 우리들의 삶속에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으면 견딜수 없는 고통이라 생각한다.

눈부신 봄볕과 버금가는 화려한 꽃들의 축제도 연중 이어진다면, 정화된 감정을 부여하는 비도 며칠만 연거퍼 내리면 무료해질 것이다. 계절이 슬퍼 너무도 좋은 낙엽지는 가을날도 계속된다면 허무감속에서 염세주의자가 될테고, 하얀 눈이 온세상의 어두움을 벗겨낸다고 해도 변함없이 이어진다면 창의력이 상실되리라 본다. 이렇게 변화가 있는 계절 하나하나를 사랑할 수 있듯이 우리들의 삶도 평화로운 날들의 연속보다는 비오는 날이 있음으로 화창한 날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낄 수 있고, 물 흐름도 완만한 곳과 폭포처럼 험난한 곳이 있듯이 오름길과 내림길을 공유하는 것이 삶이라고 본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창조하며 순간순간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보잘 것 없는 작은 풀꽃에도 때로는 위안을 받을 수 있듯이 모든 사물에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 어느 위치에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는 것 만큼 보고, 맛보는 만큼 향유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들길을 걷고 있어도 마음속에 풍부한 식물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길섶의 여러가지 꽃을 음미하면서 걸어갈 수 있지만, 마음속에 아름다운 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린 자기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우물안의 개구리 처럼 세상의 깊이와 넓이를 모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한다. 자기 범주에서 만족하지 말고 지역사회를, 크게는 국가를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거기에다가 생산적인 취미를 갖고 정진해 나간다면 보람된 삶이 되지 않을까?

이제 어두었 던 겨울을 떨치고 아장아장 걷는 병아리 같은 이 봄날 풋풋한 봄 향기를 맡기 위해 떠나야 겠다. 유년시절 봄나물 뜯던 그 오솔길을 걸으며 봄기운은 온몸 가득 느끼며 우리들 삶의 소유와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겠다. 이제 내 몸과 마음에서는 목련이 피고 라일락 향기 흩날리는 희망의 4월이 기다려진다.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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