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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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12.06.2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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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가을날, “보은에 살면서 속리산의 가을을 등산하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지? 우리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문장대를 가자”하며 친구 셋과 함께 문장대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 아름다운 가을날에 우리도 붉게 물든 단풍만큼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꼭 먹기 위해 산행을 하는 사람들처럼 각자 배낭에는 먹을 것으로 꽉꽉 채워, 오죽하면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이 “그 배낭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어, 그리 무거워 보입니까?”하고 물을 정도였다.
우린 천천히 산을 오르며 속리산의 가을을 만끽하였다. 그 곳에서 아주 푸른빛부터 곱게 물들은 단풍잎과 완전히 퇴색되어 건조한 나뭇잎을 보면서, 같은 하늘아래 같은 조건에서도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닌 것에, 우리 인간들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을바람을 맞으며 갖가지 색깔과 모양의 나뭇잎들이 비처럼 날리는 모습에 가을여인이 되었고, 계곡에는 떨어진 나뭇잎들이 예쁜 조각 이불처럼 깔려 있어 친구들은 돌아가며 감탄사를 부르짖었다. 우리는 곱게 물들은 단풍나무아래 앉아, 나뭇잎을 서로의 머리위에 뿌리기도 했는데, 한 친구가 “얘들아! 이런 날에는 이런 걸 준비해야해.”하며 배낭 속에서 예쁜 명상 시집을 꺼내, 책갈피에 빨간 단풍잎을 넣었다. 우린 이렇게 모두가 감성이 풍부한 소녀시절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 당시 두 친구는 자녀를 결혼시켰고, 나와 또 한 친구는 그러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우리 대화중에, “우리 손녀딸은......” “우리 며느리는......”라고 두 친구가 이야기를 할 때, 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직 난 며느리도 보지 않았고, 손녀딸도 없는데...... 주변사람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나이 많은 여자로 생각할까?’ 하며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속리산을 다녀온 뒤, 친구한테 앞으로 손녀딸을 지칭할 때는 “우리 아기는, 우리 수휘는 또는 00(친구의 아들이름)의 딸은”라고 하라며 협박 비슷한 부탁을 했다. 하지만 친구는 약 오르게 내 제안을 받아드리지 않고 열심히 손녀딸이라는 호칭을 우리에게 썼다. 그러다보니 그 호칭에 익숙해졌고, 그 동안 친구들의 자녀 결혼식이 많아졌으며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되어 갔다. 올봄에 초등학교 친구 자녀 결혼식에 참석 했을 때, 주변에 둘러 선 여자 친구들은 자녀를 결혼시켜 나만 빼고 모두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3년 전에 산행을 함께 했던 두 친구가 얼마 전 모임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손녀딸”이란 말을 했던 친구는 둘째손녀의 백일 날, 친구가 정성껏 모든 솜씨를 동원하여 백일 상을 차렸다고 한다. 친구내외와 아들가족, 며느리의 친정가족이 참석을 하였고, 시간이 흘러 인천에 살고 있는 사돈이 가려고 하는데 네 살 된 손녀딸이 “외할머니 가지 마!” 하면서 울더란다. 그 때, 친구의 안사돈이 “외할머니는 가야되니까 친할머니랑 재미있게 놀아.”했더니 손녀딸 하는 말이 “친할머니는 지금도 보고 싶지 않아. 근데 외할머니는 오늘도 보고 싶고, 내일도 보고 싶고, 매일매일 보고 싶어.” 하더란다. 사돈이 무안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농담으로 덧붙인 말이 그 날 백일 상을 차린 수고가 무너지고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3년 전에 “며느리”라고 했던 친구는, 남매 쌍둥이 할머니가 되었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어느 날 며느리가 일이 있다며 손주들을 하루만 봐달라고 하더란다. 첫돌이 가까운 두 아이는 그런대로 잘 놀았지만 손자는 놀다가 잠깐씩 문을 바라보며 울곤 했단다. 그러다 저녁때 퇴근한 아들을 보더니 달려가 안기며 엉엉 울었고, 이튿날 며느리가 오니까 그때는 더욱 크게 엉엉 울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아이엄마도 할머니인 친구도 함께 울며 다시는 아이들 떼어 놓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단다.
그 날 두 친구의 말을 들으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아이들은 하나의 인격체를 갖추었다는 것과, 3년 전 나이의 현실을 적극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제는 아이들의 성장기를 보며 즐거움과 재미를 솔솔 보는 할머니가 된 친구들이 부러웠고, 이렇게 가는 세월 속에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하고 우리는 살짝 뒤안길로 물러나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꽃은 핀다. 시기가 다르고 꽃의 크기가 좀 다를 뿐이지만 늘 꽃은 피고 또 진다. 우리의 꽃은 어떤 것이었으며 새롭게 피는 꽃들은 어떤 색깔과 향기를 지닐 것인지 궁금해진다. 장미꽃이 흐드러지고, 망초가 들길과 산길 사방에서 새하얗게 웃고 있는 이 더운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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