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고 제국을 건설했던 진시황이 영토순행 중 객사하자 수행했던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가 모의하여 거짓 유서를 만들었다. 이 유서에 의해 황제 승계 0순위 큰아들 부소와 대장군 몽염을 자결시킨다. 그리고 후궁이 낳은 가장 나이어린 막내 호해(胡亥)를 이세(二世)황제로 앉힌 후, 조고는 권력 다툼 자가 되어버린 이사도 모함하여 삼족을 멸해버린다.
승상이 된 조고는 이제 거칠 게 없어 국정을 농락하기 시작했다. 호해는 ‘천하의 모든 쾌락을 마음껏 즐기며 살겠다’고 할 정도로 어리석은 황제였다. 이러다보니 간덩이가 부은 조고는 이제 황제자리까지 넘보게 됐다. 그러나 자신의 출신이 미천하여 조정대신들이 반대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였다. 그래서 자신의 권력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해 보고 싶었다.
어느 날 조고가 등청을 하면서 사슴 한 마리를 끌고 왔다. 그리고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고 밤에도 팔백 리를 달리는 천하의 준마’라며 황제께 헌상한다고 아뢰었다. 바보 같은 황제라도 사슴과 말은 구분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황제는 웃으면서 ‘승상이 잘못 알고 있다’면서 ‘농담하지 말라’고 했다. 이에 조고가 좌우 대신들을 휘둘러보며 ‘틀림없는 말인데 어찌 사슴이라고 하느냐’며 눈을 부라렸다.
겁에 질린 황제가 대신들에게 동조를 구했다. 그러나 조고의 위압에 기죽은 문무백관 대부분은 ‘말’이라고 대답했다. 득의에 찬 조고는 큰소리로 웃었으며 황제는 어리벙벙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개중에는 입을 아예 다물었거나 혹은 정직하게 사슴이라고 대답한 대신도 있기는 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대신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모두 죽였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비유할 때 인용된다. 또는 모순된 것을 우겨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요즘 통치권에서 횡행하는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인 ‘꼼수’도 포함 될지는 모르겠다.
참고로 진제국의 멸망은 진시황이 죽으면서 급속하게 진행됐다. 정치권력 제일 꼭대기에 올라 있었던 조고가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한 일이라고는 사람 죽인 일 뿐이었다. 황태자 부소와 황제 호해를 죽였다. 유능한 승상 이사도 죽였다. 진시황의 자녀30-40명을 죽였으며 수십 명의 대신과 수백 명의 그들 가족을 죽였다. 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백성을 죽였다. 그런 그도 결국 진시황의 단 하나 남은 혈족 부소의 아들 자영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헌법 제1조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있다. 이 나라의 윗사람은 바로 국민이란 의미다. 국민 앞에서 ‘지록위마’를 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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