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지락(江湖之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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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지락(江湖之樂)
  • 보은신문
  • 승인 2002.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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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건 식(보은은 교사리/전 군 농정과장)
‘강호(江湖)에 여름이 드니 초당(草堂)에 일이 없다 유신(有信) 강파(江波)는 보내느니 바람이라 이 몸이 서늘하옴도 역군은(亦君恩)이 샷다’

세종 때 명상 맹사성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의 여름 노래로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 생활의 심경을 진솔하게 읊고 있다. 강호란 강과 호수를 말하나 은자(隱者)나 시인묵객(詩人墨客)이 자연에 묻혀 생활하던 곳이며 조정(朝廷)에 대하여 시골을 말하기도 한다.

옛 선비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어지러운 속세를 떠나 대자연속에 묻혀 벗하며 삶을 즐겼고 이를 일컬어 강호지인(江湖之人)이라 불렸고 그 경지를 찬양하여 읊조린 노래가 강호가(江湖歌)요 그러한 생활의 한바탕 꿈을 강호일몽(江湖一夢), 그 즐거움을 강호지락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강호지인도 옥도 많았지만 돌도 있었다.

율곡선생은 강호에 돌아가서 생활하는 태도를 넷으로 구분하였는데 이른바 ‘유현(遺賢)’ ‘념퇴(恬退)’ ‘도명(盜名)’으로「강호사품론(江湖四品論)」이다. "유현"은 명예와 부귀를 떠나 강호에 노닐며 학문을 닦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아주 떠난 것은 아니고 때를 만나면 벼슬에 나가 백성을 계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이들이며 "은둔"은 온갖 세상을 티끌같이 보고 강호에 완전히 몸을 숨기고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이들이며 ‘념퇴’는 스스로 자신의 학문과 덕행에 한계를 느끼고 강호에 돌아가 조용히 연마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이들을 말한다.

‘도명’은 문자 그대로 청명(淸名)을 탐내어 거짓으로 강호에 묻혀 살면서 벼슬을 버릴 생각이 조금도 없으면서 청빈을 흉내내며 강호에서 자나깨나 임금이 부르기를 바라는 사람을 가르키는 것으로 예로부터 ‘유현’보다는 ‘도명’이 많았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지금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 ‘연인천하'에 등장하는 심정(沈貞)의 일화는 걸작이다. 그는 기묘사화 뒤에 소요정(逍遙亭)에 시를 지어 현판을 만들어 정자 문미에 걸었는데 다음 구절이 있었다. ‘젊어서는 사직을 붙들었고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도다(靑春扶社稷, 白首臥江湖)’

어느 날 밤 꿈에 젊은 협객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심정의 상투를 움켜잡고 죄목을 열거하면서 꾸짖었다. ‘네가 사화를 일으켜 착한 선비들을 거의 다 죽여서 종묘 사직이 쓰러질 뻔하였는데 네가 감히 '사직을 붙들었다(扶社稷)'느니 '강호에 누웠다(臥江湖)'는 등의 말로 시를지어 건단 말인가 네가 만일 ‘扶'자와 ‘臥'자를 빨리 고치지 않으면 내가 네목을 밸 것이다"

심정이 엎드려 사죄 하면서 말하였다. “扶’자는 ‘위태롭다'는 ‘위(危)'자로 ‘臥'자는 ‘엎드려 숨어있다'는 ‘칩(蟄)'자로 고치겠습니다”
젊은 협객은 안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무슨 글자로 고쳐야 하는지 그것을 가르쳐주기 바라오” “扶자는 ‘기울어져 망하다'는 ‘경(傾)'자로 고치고‘臥'자는 ‘더럽히다'는 ‘오(汚)'자로 고쳐라" 심정은 협객이 말한 그대로 고쳐 놓았다. 「대동기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은 ‘유현’의 경지는 모르겠으나 ‘도명’의 무리가 되어 강호지락을 즐기려해도 즐긴만한 곳이 없으니 서글프다 환경은 심하게 오염되었고 자연은 무참하게 파괴되었으니 말이다. 차라리 잠이나 청하여 강호일몽(江湖一夢)이나 꾸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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