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동화 ( 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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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동화 ( 은어 )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11.07.1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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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며칠 째, 보청천에는 흙탕물이 흐르고 둑길에 하얗게 피었던 망초는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지난 6월과 7월이 교차하는 시점에 열흘 정도 서울에 있었다. 매일 큰 아이가 사는 곳과 작은 아이 집을 시내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면서 오고 갔었다. 그 때도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차를 타면서 우산을 접고, 차에서 내릴 때는 우산을 펴는 그 과정에서 빗방울을 맞았고 비의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이 불편함과 편안함이 공존한다는 것을 그대로 즐기며 온전히 내 두 아이를 위한 시간을 가졌다.
또 지난 토요일에는 법주사에서 계곡의 물소리, 매미소리와 어우러진 빗소리를 들었고, 산사 처마 끝에 뚝뚝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우리의 삶도 계곡의 물처럼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장마동안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했고, 또 속리산의 법주사를 다녀오면서 꼭 10년 전에, 쓴 일기의 내용과 연관성이 있어서 다시 읽게 되었고 그 때의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 2001년 7월 5일>
큰 녀석(고1)이 이틀째 기말고사를 치르고 와서 점심을 먹고 30분 후에 깨워 달라며 막 잠이 들었다. 계속 잠을 못잔 탓인지 얼굴이 핼쓱해서 내 앞에 돌아온 아이를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로서 힘이 되어 줄 일이 없을까 그저 고민만 해본다.
아이들의 시간관리를 해주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박상하 작가가 쓴 <은어>란 아주 맑고 투명한 소설이다. 사랑의 시작과 친구와 가족관계를 사람과 비유하여 그림 같은 화엄사와 섬진강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화엄사를 끼고 도는 계곡 중에 하늘연못이라는 곳에 사는 작은 은어가 청년연어로 성장하기 위한 생존을 위해 급류타기 연습을 하고, 그 과정에서 나팔꽃빛 여자 은어를 사랑하게 된다. 섬진강 진출을 위한 과정으로 화엄사 계곡의 물이 처음 시작되는 시원(始原)의 연못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하면서 이별을 해야 하고, 겨울이 찾아와 얼음장에 갇혀 봄까지 있다가 다시 찾은 하늘연못에는 모두가 그대로지만, 언제나 한시도 잊지 않았던 나팔꽃빛 은어는, 가족과 함께 섬진강으로 이사를 가고 없어, 그 은어도 그 넓고 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섬진강으로 나팔꽃빛 은어를 찾아 떠난다. 섬진강에서 친구를 만들기도 했고, 나팔꽃 은어를 찾아 헤맨다.
나팔꽃빛 은어와의 이별을 예감하며 푸름이 은어(주인공 이름)는 이렇게 말한다.
“난 알 수 없었다. 아름다운 것은 왜 영원할 수 없는지를, 풀잎 끝에 스러지는 이슬만큼 그저 덧없어야 하는지를 사랑이 가까워지면 이별도 가까워진다는 것을...”
“진정한 친구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줄 수 없는 것을 주고,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며, 어려울 때에도 버리지 아니하고 곁에 있어 주는, 그런 이가 아닐까?”
<2001년 7월 6일>
조카(고1)는 어제 시험이 끝나 어젯밤을 여유롭게 푹 잤고, 큰 녀석은 오늘 끝나고, 가엽게도 작은 녀석(중1)은 내일까지 시험이 이어져 오늘밤도 늦도록 잠을 못 잘 것 같다. 지난 중간고사처럼 한꺼번에 이루어졌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나 역시 시험기간이 일주일이나 길게 늘어진다.
내일은 조카 생일인데 작은 녀석은 시험이 다 끝나지 않았으니 미역국을 먹지 못할 것 같다. 난 미역국을 아주 좋아하지만 시험 일정이 결정되면 미역국을 끓이지 않는다. 믿을 건 못되지만 좀 더 정성을 들여 보는 것이다.
은어 이야기는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아주 예쁘지만 너무 슬프다.
푸름이 은어가 신비로울 만큼 은은한 연보랏빛을 띤 나팔꽃빛 은어를 찾아 섬진강 구석구석을 찾고 흘러흘러 화개장터 탑리 마을 주변을 지나 하동포구까지 간다. 가는 동안 위험한 일도 많이 당하고 친구도 그물망에 갇히어 잃게 된다. 그러나 오직 옛 사랑을 찾아 많은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간다. 그것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팔꽃빛 은어와 반가운 해후를 하는데 낮에는 함께 있어도 저녁이면 떠나곤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화엄사 하늘 연못으로 떠나자는 푸름이 은어의 이야기에 나팔꽃빛 은어는 슬픈 표정으로 이미 남의 아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같이 떠날 수 없음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걸 잃은 듯 푸름이 은어는 다시 하늘 연못을 향해 떠나고 그 긴 여정과 실연의 아픔에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만 간다. 그러다 사람 손에 잡히게 되지만 스님에 의해 구조가 된다.
스님은 화엄사 사자문 안 만월당 담장 아래 연못을 만들어 푸름이 은어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준다. 그러나 푸름이 은어는 먹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뒷산에 묻히게 된다.
시름시름 앓고 있는 푸름이를 보며 스님은 "아직도 잊지 못해 그리워하고 있구나."라고 말했고, 푸름이는 "스님, 어떻게 이다지 가혹할 수가 있습니까? 사랑은 왜 오로지 자신의 마음에만 있어야 합니까? 타인의 마음에도 있어서 함께 나누지 못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든 사랑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까?"라고 한다.
"그래도 사랑하라. 몇 겁의 윤회로 다시 환생해야 만이 비로소 이별 없는 사랑이 이루어질지라도. 부디 그 날이 도래할 때까지 그래도 사랑 하라. 혼자만이라도 사랑하라" 이런 슬픈 대화도 있다. 끝내 푸름이 은어는 산사 구석구석에 고요히 울려 퍼지는 풍경이 된다. "사랑은 어느 날 문득 바람처럼 우리 곁에 쉽게 다가오는 것이지만 그 상처는 그림자처럼 오래도록 따라다니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채...
사랑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엿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마음을 맑게 해주는 어른들을 위한 예쁜 동화라 생각한다. (일기전문)
10년 전에 읽었던 은어를 떠올려 보았다. 좀 더 맑게 밝게 긍정적으로 오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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