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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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길손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11.05.12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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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 서 있던 얼마 전에, 부부모임으로 강화도를 가게 되었다. 강화대교를 지나니 바로 문화재인 ‘초지진’이었다. 그곳은 수많은 외침이 있었고, 130여년 전 일본군함 운양호와 초지진포대와 격렬한 포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성축과 홀로 남은 노송에는 당시의 포탄자국이 남아 있었다. 많은 세월이 지나 그 때의 사람들은 가고 없어도 흔적은 남아 수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다녀갔으리라. 사람들은 왜 예전이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일까? 아님 인류평화를 위한 것이라고도 할까? 그러나 전쟁은 많은 인명과 자연파괴 재산을 잃기에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훨씬 많다. 우리의 마음도 자신, 주변사람들, 환경과의 전쟁으로 많은 상처를 입고 때로는 치명적일 때도 있다.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지구도 늘 평화로웠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초지진을 뒤로 하고 바다를 보며 들길과 산길을 지나 모임 장소인 마니산 입구에 도착했다. 산길로 이어진 계단과 바위 그리고 울창한 숲의 노송과 훅 다가오는 공기가, 내가 최고의 산이라 늘 생각하는 속리산과 닮아 있었다.
속리산은 나를 성장하게 한 일부이며 마음속의 안식처이기도 한데, 마니산은 우리민족의 머리로 상징되고, 단군성조께서 하늘에 제천의식을 봉행한 참성단이 있다. 이곳은 매년 전국체육대회 때, 성화가 채화f봉송되며 개천절에는 제전을 올리는 곳이다. 어떤 모습일까? 성화 채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었던 우리민족의 영산인 참성단을 꼭 보고 싶었다. 그러나 산행하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그저 산 아래에서 참성단이 어디쯤일까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또 다른 기대감으로 해안 길을 따라 강화도 남쪽을 돌아보았다. 몇몇 유적지와 석모도로 가는 선착장에 서보기도 했다. 곳곳에 예쁜 이름을 달고 예쁘게 지은 펜션들이 수도 없이 많이 차창을 지나갔다.
반복된 풍경에 살짝 지루해질 무렵 ‘동막’ 해수욕장을 만났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하얀 백사장과 끝없이 펼쳐진 넓은 갯벌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내 가슴을 확 트이게 만들었고 잠자고 있던 감성을 일깨웠다.
먼저 동막 해수욕장 끝에 차를 파킹하고 바로 갯벌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손을 들면 잡힐 듯한 거리에 수많은 갈매기 떼가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먹으며 사람들과 뒤섞여 끼륵끼륵 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얀 모습의 갈매기를 보니 내가 아닌 그 누구의 존재로 살아가는 현실의 일상을 떨치고 마음껏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매기를 구경하고 한 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걸었다. 바닷가에는 가족들과 함께 온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도 섞여있었고, 다정한 연인들의 사랑도 전이되어 따스했다. 썰물이 되어 끝없이 펼쳐진 갯벌에는 검은 개흙을 뒤집어쓰고 기어다니는 갯지렁이와 게를 발견하기도 했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멀리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백사장과 갯벌을 오르내리며 걸었다.
그 때, 내 마음의 귓가에 “해변의 길손”의 곡이 들려왔다. 이 곡은 클라리넷이나 트럼펫, 색소폰 등 여러 악기로 연주되기도 하고 앤디 월리암스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른 노래이다. 그 중, 클라리넷으로 연주되는 “해변의 길손”을 주로 들었는데, 그 곡을 들으면 쓸쓸함이 묻어나고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 가슴 아파했던 젊은 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곡의 배경을 해질녘의 바닷가를 홀로 걷는 나그네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는데 동막해수욕장의 바닷가를 걸으며 상상속의 배경과 일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의 길손의 가사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빠져나가는 썰물을 바라보며/ 나 홀로 여기 서 있네. /외로움을 한 아름 안고 /그대의 환영을 꿈꾸며 / 망망대해로 향하는 배를 쳐다보네. / 배와 함께 내 꿈을 띄우고 / 나의 모든 것을 흘려보내며 / 나 홀로 여기 서 있네.
파도의 한숨 소리 바람의 울음소리 / 두 눈에 고인 눈물은 /여인을 애타 게 기다리며
흘러내리네. /왜, 왜 나는 / 이렇게 홀로 있어야만 하는가. /나는 단지 /외로운 해변의 길손에 지나지 않는가.>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낸 주인공의 슬픈 마음이 전달된다. 만남과 이별은 늘 형제처럼 자매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닐까?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슬픔도 영원한 것은 없고 늘 변한다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수시로 찾아오는 고민도 마찬가지다.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데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다. 간절한 바람도 그렇다.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을 불안과 초조 속에서 기다려야 하고 마음을 쓸어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바다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소나무숲길을 택했다. 해송의 크기를 보니 세월의 두께를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언젠가 해송의 두께로 다시 이 바닷가에 서서 해변의 길손이 되어 보겠다는 기대를 해보며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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