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비추는 몸짓, 침묵의 벽 깨고 소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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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비추는 몸짓, 침묵의 벽 깨고 소통으로’
  • 천성남 기자
  • 승인 2010.09.02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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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숙 (사)충북농아인협회 보은군 수화통역센터 수화통역사
침묵의 세계를 깨고 현란한 몸짓을 통해 상대방의 내면 감정이나 생각을 이끌어 내는 그는 분명 마임 꾼이다. 소리 없는 그의 몸짓 보다 더 오래되고 보편적인 표현 방법이 있을까. 태초부터 존재했고, 태아 때부터 시작한 몸짓을 통해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몸으로 반응하는 마임의 세계와 다름없는 것이 바로 수화통역의 세계다. 생의 한 가운데서 한 아름다운 농아인과의 만남으로 시작된 18년 베테랑인 전문 수화통역사 지은숙(43·보은군수화통역센터주임 ☎544-6908~9)씨를 만나봤다. 〈편집자 주〉

◇버스에서 필담으로 만난 아름다운 인연

지난 1986년 4월 29일. 충청대학(유아교육과) 1학년이었던 그가 버스 속에서 우연히 남편 안성국(48·청주 농아인교회 목사)씨와 맞닥뜨리게 됐던 날이다.
괴산출생인 남편 안 씨는 그날 서울에서 괴산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그는 청주에서 괴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각각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남편의 첫 필담으로 시작됐던 이들의 첫 만남은 무조건 종이에다 볼펜으로 쓴 “나는 청각언어장애인입니다. 수화를 아십니까?” 그 한마디였다.
그는 성당에 다녔고 남편은 교회를 다녔다. 언젠가 가보았던 청각장애인학교인 충주 성심학교 덕에 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의 오빠가 농아인 이었기에 그는 수화를 배우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도 농아인협회서 본격 수화공부 시작

그 이듬해인 1987년, 그는 마침내 충북도농아인협회서 본격적으로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사랑의 힘 때문인지 성당에서 교회로 적을 옮긴 그는 남편이 다니고 있던 청주상당교회에서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마침 그 해에 상당교회 내에는 각 처소에서 모인 농아인들이 수화를 배우는 농아부가 창ㅅㄹ된 것이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무엇보다 남편과의 의사소통이잖아요. 그래서 성당에서 교회로 옮기면서 까지 수화를 배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요. 제가 생각해도 정말 열심히 수화공부를 했어요.”

◇지난97년 첫 수화통역사 자격증 생겨나

1997년, 처음으로 수화통역사 자격증 제도가 생겨났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얻어냈다.
“그러나 민간 수화통역사 자격증이 생긴 것은 그로부터 8년 뒤인 2005년이 되어서였어요. 그래서 다시 그 자격증을 따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 3년 뒤인 2007년에 자격증을 확보했죠. 그러나 주일날 시험을 보는 탓에 불편함이 많았는데 지금은 토요일로 변경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처음 봉사자로 신학대서 목사수업도 마쳐

처음엔 경주나 영주에는 수화통역사가 없었다. 그래서 청주 나사렛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에게 수화통역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충청대 수화동아리인 ‘소리그리기’를 통해 수화노래 등 수화를 위한 봉사를 하기도 했다.
“처음엔 봉사자로서 농아인들의 대변자가 되어 수화로 통역을 했어요. 남편은 상당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지난 2000년 경주 제일교회로 파송되어 목회 일을 보았어요. 당시 저는 경주에 있는 영남신학교로 편입하여 목사자격도 갖추게 됐습니다. 그때의 많은 경험들이 오늘날 제가 수화통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밑바탕이 되어 주었어요. 엘리트 농아인 학생들 사이에서 토론도 하고 수화에 대한 폭넓은 공부를 정말 많이 배우게 된 계기가 바로 그 때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만남 5년 만에 결혼 결실 2남 ‘보물 1호’

남편과 만난 지 6년 만에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된 그는 더욱 열심히 수화를 통한 의사소통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에게는 그 때가 최고의 행복한 시간들 이었다.
청각장애 2급인 남편은 보청기를 끼고 산다. 다른 사람이 아닌 아내가 큰 소리로 말하면 거의 알아듣는 그를 위해 그의 수화는 어느덧 그렇게 그의 인생의 일부분이 됐다.
“사랑의 결실로 아들 둘을 두었어요. 2남 중에서 고 2가 된 맏아들 홍식이와 중 2년생인 재식이가 있지요. 아침 8시5분까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출근을 서두르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청주에서 보은으로 출퇴근을 하니 더욱 그렇지요.”
그러나 그는 “정작 바쁘긴 하지만 출근길이 너무나 보람되고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어 그런지 그럴 겨를도 못 느낀다.”며 “그들에게 다양한 생활정보와 학습을 통해 글자를 알게 하는 기쁨은 정말 해보지 않으면 누구라도 알 수 없는 느낌일 것”이라고 말했다.

◇농아인 전문교재·빔 프로젝트 설치 필요성

보은군 수화통역센터는 지난 2008년 7월 7일 개소됐다. 주임을 맡고 있는 그는 언제나 촉각이 농아인들의 불편과 의사를 소통시키는 것에 맞닿아있다.
그 중 교육기자재 하나로 군에 지원요청을 하고 싶은 것은 바로 ‘빔 프로젝트’다.
이 기기는 농아인들에게 학습이해를 쉽게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지자재로 더 이상 시설에 따른 기기지원이 어렵다는 군 관계자의 답변에 마음이 무거운 그다.
보은지역 청각장애인 수는 줄잡아 400여 명, 언어장애인 수는 500여 명으로 등록되어 있다.
특히 슈퍼 노령층으로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일정한 표준수화로 가르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그다.
“그분들은 글을 못 배워 자연수화가 몸에 배여 있어요. 현재 일반 유치원 수준인 수화교재 프로그램을 통해 표준수화로 이끌고 가는 것이 과제이지요. 거기다가 농아인들을 위한 전문교재가 하나도 없어 농아인 전문교재 연구가 절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림, 글, 수화를 통해 이해시키다보니 이중고를 겪는 셈입니다.”

◇노령층 농아인들의 ‘쉼터광장’ 마련‘절실’


매년 6월 3일은 농아인의 날로 연례행사를 치르고 있다. 특히 내년 6월 3일은 농아인의 날 기념식과 더불어 충북도 농아인 한마음체육대회가 열린다.
그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이지만 군 단위로서는 수화통역센터가 옥천다음으로 두 번째로 보은에 생겨난 것에 대해 큰 보람과 자부심을 갖고 산다.
“일반 노인층을 위한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등은 곳곳에 설치돼 있지만 노인층 농아인들을 위한 ‘전용쉼터’는 현재 없는 실정이다. 군에서 이들이 편안하게 소통하며 쉴 수 있는 ‘전용 쉼터’를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농아인들의 대변인이자 농아남편을 둔 그의 소망은 항상 여기서 출발한다. 그들의 진정한 복지가 완성되는 날까지 그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천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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