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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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 최동철 편집위원
  • 승인 2010.06.2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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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1일이면 새롭게 선출된 보은군수와 군 의회의원들의 4년 임기가 시작된다. 보은군 역사의 전환점이 될 또 한 차례의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제 더불어 필요한 것은 '기득권 계층'이라 불리는 군내 지도층 인사들의 시대정신이다. 군민들의 힘을 모아 번영의 길로 들어서는 역할에 동참 할지 아니면 반목질시(反目嫉視)와 편 가르기로 있던 쪽박마저 깨버리고 몰락해 버리고 마는 '밥통'이 될지 결정해야 한다.

모두가 합심하여 기회를 잘 살리면 보은읍과 속리산, 법주사 일대에 인파가 북적거리고 농민들의 '풍년가'가 들녘에 울려 퍼질 수도 있다. 동참한 기득권층은 체면과 명예를 갖고 군민들로부터 칭송을 받게 될 것이다. 반면 매사에 비협조와 훼방 그리고 비판을 위한 비난만을 일삼아 군내 불협화음을 조장하는 이 들의 종말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어리석은 당사자들만이 모를 뿐이다. 그렇다면 대의(大義)를 가질 것인가, 소리(小利)를 추구할 것인가. 명예와 실익 모두를 챙기고 싶은가. 선택은 자유다.

오는 30일은 4년간 보은군정을 이끌었던 이향래 군수, 5대 군 의회의원들의 임기가 종료되는 날이다. 듣기로는 이 군수가 병중에도 불구하고 이날 '퇴임식'을 할 것이라 한다. 돌이켜 보면 지난 4년은 참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보은 군정은 더욱 그랬다. 몇몇 정책과 시책은 여대야소 군 의회 하에서 군민입장보다는 집행부와 의회 간 고집세우기로 일관했다. 이로 인한 손해는 늘 군민 몫이었다. 더구나 임기 막판 비리혐의로 군청 고위공직자가 구속 조사를 받았거나 기소됐으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사건도 발생했다. 명품 대추 등 4년 치적의 공(功)이 과(過)로 얼룩지는 치욕이 되고 말았다. 물론 당사자들의 부덕과 과욕이 빗어낸 결과이지만 한편으로 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우리 군민들의 과실도 인정해야 한다면 과언일까.

그래서 뇌물과 특혜, 각종 이권을 주고받거나 공여할 수 있는 위치의 공직자를 포함한 기득권층에게 노파심에서 경계를 삼고자 중국의 역사서 십팔사략(十八史略)의 양진사지(楊震四知)라는 고사 '천지지지자지아지(天知地知子知我知)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안다.(※子는 3인칭으로도 사용됨)를 소개한다.

중국 후한 시대 홍농지방에 양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가난하게 자랐지만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인품이 훌륭했다.
나이 50여세에 이르러 황제로부터 청렴성을 인정받아 형주자사를 네 번이나 지내고 이윽고 동래 태수로 임명됐다. 양진은 임지로 가던 중 창읍이라는 곳에 들렀다. 그냥 지나쳐도 될 것을 당시 창읍 현령 왕밀이 형주자사를 할 때 밑에 데리고 있던 건실한 사람이라 얼굴이라도 보고 가자며 들렀던 것이다.
그런데 전에 형주에 있을 때 신세를 졌던 왕밀은 양진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밤에 몰래 금 10근을 가져와 양진에게 바쳤다. 그러나 마음의 선물이라면 굳이 사양할 일이 아니지만, 금 열 근은 누가 보더라도 뇌물이었다.
양진이 황금을 물리치며 말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자네를 알고 있네만, 자네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모양일세. 그 까닭이 무엇인가” 왕밀은 금덩어리가 든 상자를 다시 양진에게 내밀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지금은 밤이 깊었으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양진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또 내가 알고 있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오" 양진은 이렇게 꾸짖은 후 다시 금덩어리가 든 상자를 떠안겼다. 왕밀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그대로 물러갔다.
훗날 양진은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지만, 환관과 황제의 유모인 왕성의 청탁을 거절했다가 모함을 받게 되자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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