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와 조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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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와 조팝나무
  • 김정범 실버기자
  • 승인 2010.05.2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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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외출을 하였다가 돌아오는 길에 집 가까이 이르러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산자락과 방천 둑에 미쳐 보지 못하고 있던 조팝나무 꽃이 하얗게 피어 있어 차를 세우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마치 흰 구름이 내려앉은 듯 군락을 이루어 만발한 풍경이 너무 좋아 한동안 아름다움의 정취에 빠져 들었다가 어려서 어른들께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마음이 아련하게 저려 오기도 하였다. 예전 조팝나무 꽃이 필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보릿고개라 일컫는 춘궁기는 대개의 민초들이 겪는 너무나도 넘기 힘든 삶의 고개였다. 지금이야 보리밭을 보기도 어려울 만큼 귀해 졌고 바람이 일적 마다 출렁이는 맥랑의 파도는 지난날의 그리움만을 남겨 주었을 뿐이지만 보리는 우리에게 있어 없어서는 아니 될 중요한 식량임은 분명하다.
시집간 딸네 집에 친정아버지가 오셨다. 마땅히 반갑고 대접을 잘 해 드려야 하지만 보릿고개 철이라서 양식이 없으니 걱정과 죄스러움이 앞서 하는 말이 “아버님 오시면서 조팝나무 꽃 핀 것도 못 보셨어요?”라고 하였단다. 이 말을 하는 딸의 마음이 어떠했으며 이 말을 들은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였으랴?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의 살아온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에게는 아픔과 추억이 함께 남아 있는 이야기로 기억 될 것으로 여겨진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가 너무 많이 있다. 때로는 피하고 싶고 때로는 남에게 넘겨주고 싶고 때로는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고개가 어디 보릿고개 뿐이랴? 발로 걷는 길이라면 힘들면 돌아 갈 수도 있고 쉬었다 갈 수도 있고 아니 갈 수도 있지만 나에게 주어진 삶의 인생길이야 피할 수 있어 피해지는 것도 아니며 남에게 넘겨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주저앉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기에 그래도 그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 내 몫이라면 그것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여 극복하고 나가야 할 것이기에, 그리고 결국은 그 삶으로 내가 행복하고 내가 세상을 아름답다고 하며 보람과 자랑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가 그렇게 살아 오셨고 우리의 어머니가 그렇게 살아 오셨는가 하면 이 시대의 우리 세대도 그렇게 살아 왔고 또 우리의 아들과 딸들도 보릿고개는 모른다 해도 그렇게 살아 갈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삶을 종교에서는 원죄의 결과라 하기도 하고 인과응보의 업보라고도 하지만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의 여정은 정상만을 향하여 오르는 등반가의 걸음도 아니고 쉬지 않고 달려야만 하는 마라톤 선수의 경주도 아니기에 그저 쉬지 않고 열심히 걸어가면 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러기에 우리보다 앞서 걸어간 모든 선배들이 보릿고개를 비롯한 모든 인생의 고개들을 넘고 넘어서 우리에게 이 시대의 풍요로움을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았는가?
가파른 길에서 한숨 쉬는 사람들이여.
눈앞에 언덕 만 보지 말고
그 뒤에 펼쳐질 평원을 생각 해 보라
외려 기뻐하고 감사 할 일이 아닌지...

이정하 님의 시 “길을 걷다가”의 한 구절이다. 길을 가다보면 돌부리에 채일 수도 있고 넘어 질 수도 있고 또 고개를 넘어야 할 때도 있지만 평탄한 길도 걸을 수 있고 동행하는 동반자도 만나 서로 힘이 되고 위로하며 함께 가면서 고갯마루 정상에서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씻으며 내리막길과 아래의 평탄한 길을 바라보는 기쁨과 희망으로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 여정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여유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이처럼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 하면서 자신의 삶을 지켜 온 인생이야 말로 가장 위대하고 존경 받는 성공 된 삶이라 여겨진다. 성공이란 각 자의 생각이나 목표, 가치관의 성취에 따라 다르게 평가 될 수 있으나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삶이 성공적인 삶으로 평가 되는 것은 그 속에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가 내재 되어 있고 인간관계가 사랑과 이해로, 그리고 배려하는 아름다움으로 엮여 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지금도 힘들게 고개를 오르는 이들이여 우리 다 함께 힘을 내어 오릅시다. 그리고 고개 너머 펼쳐진 평원을 바라 봅시다.
/김정범 실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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