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로써 ‘행복바이러스’ 전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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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로써 ‘행복바이러스’ 전파 하세요
  • 천성남 기자
  • 승인 2010.04.2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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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보은군자원봉사센터 보은읍자원봉사회장
봉사를 통해 날마다 행복을 느끼는 사람, 그리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 자타가 봉사지킴이로 불리고 있는 보은군자원봉사센터(센터장 황선은 보은읍 삼산리 1구 ☏544-3409)의 김영윤(68·보은읍자원봉사회장)씨를 만났다.
언제 보아도 싱글벙글 눈으로 웃어주는 인간적 매력이 풍기는 그는 그래서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지난 85년 새살림 난 교사3구 회장
지난 85년 교사2구 부녀회장을 맡아왔던 김씨는 동네가 커지자 교사3구로 분구되면서 동네사람들의 추천으로 3구 회장으로 새 살림을 맡게 된다.
“회원도 변변히 없는 상태에서 예산도 없이 단체를 꾸려가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래서 당시 교사2구 회장을 찾아갔어요. 자금을 좀 달라고요. 그러나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한 일이지만 그 때는 얼마나 섭섭하던지요.”
김씨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부녀회를 조직한 것이 30여명 가량이었어요. 변변한 회관이 없어 저희 집에서 거점을 정해 일하면서도 달달이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 때부터 동네를 돌아다니며 빈병이며 박스, 종이, 신문지 등 폐품이라면 있는 대로 주웠다.
“그런데 세상인심이라는 것이 협조를 별로 안하더군요. 오히려 남편이 몰아주는 차로 수거를 해와 근근이 자금을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15년간 그렇게 단체를 이끌어온 김 씨는 차기 회장에게 단체를 물려줄 때 300만원을 넘겨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군청 자원봉사 모집광고로 첫 입문
“47년 전에 결혼을 했지요. 물론 그때부터 신앙생활은 해왔지만 말 그대로 봉사활동을 통해 더욱 신앙생활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만 나면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씨는 “요즘 세태를 보면 내 가정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들을 하는 것 같은데 그것보다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을 만들어내는 비결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어느 날 문득 TV를 보다 자막으로 나오는 군청 자원봉사 모집광고를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당시 전부터 알고 지냈던 복지과 김정숙 계장(당시)을 찾아가 ‘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선뜻 그러라고 했어요. 그것이 봉사와 인연을 맺은 첫 관문이었어요.”
‘봉사’라는 단어가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김 씨에게는 특별할 것도 없는 당연한 말이다.
“당시에는 요쿠르트, 빵 등을 사서 노인들을 방문하여 청소, 빨래, 면담을 해주는 등 자비를 들여 해왔어요. 그러다가 군에서 지원이 시골로 다니면 한 달에 3000원 정도 나오더군요.”
지금까지 김 씨가 돌보아온 노인들 중 할머니 3명, 할머니 1명은 청주로 이사를 갔다.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이 마냥 허전하다.

◇16년 째 밑반찬 나르기, 청소등 봉사
현재는 용암에 2명, 읍내에 2명 합쳐 4명의 노인들을 그가 돌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봉사의 힘일 것이다.
보은읍 자원봉사센터에서 일을 해온 지 만 16여 년 째. 1주일에 한번 밑반찬에서부터 한 달에 3000원의 회비를 보태 봉사를 하면서 전에는 먼거리인 상초 1구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부부자원봉사 직함으로 활동 ‘행복’
남편인 이영호(71)씨도 봉사를 좋아한다. 천생연분이다. 그래서 자원봉사센터에서 부부자원봉사라는 직함도 선사받았다.
“부부로 자원봉사를 하니 더욱 좋지요. 한 달에 한 번씩 혼자 사는 노인, 정신지체노인 등을 방문해 청소를 돕지요. 봉사라는 자체가 우리에게 금슬을 좋게 하는 비결도 줍디다. 행복이란 단어가 자꾸 생각나요.”
누가 뭐래도 자원봉사부부의 직함으로 활동하는 김 씨 부부는 집안에서는 효자효부다.
봉사를 하며 90세의 노모를 극진히 모시는 이들 부부는 벌써 5년 째 다.
“거동을 못한지가 5년이 다되어가네요. 이제는 더 심해져서 돌아가시는 줄만 알았어요.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음식을 떠먹여드리고...”
간병을 하고 봉사를 나가려면 새벽 4시에는 기상을 하는 김 씨다. 그래야 반찬 만들어 식사준비하고 나갈 채비를 갖추기 때문이다.
“우리 남편 요? 착하고 심성 좋고 그러나 결혼초기에는 맨주먹으로 시작하여 고생도 많았어요. 3형제를 4년제 대학에 보내고 그러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그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다는 김씨는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 할 정도로 행복에 겨워했던 그다. 그러나 그 후 걱정거리가 생겨났다.
다는 아니지만 아들의 사업이 원활치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걱정하지 않는다. 왠지 행복에 겨운 마음을 많이 가져 이렇게 된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지는 그다.
“걱정하지 않아요. 봉사를 하면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바뀌니까요. 아들 일 도 앞으로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마음은 다 그렇다 했나, 내가 행복한 것보다 자식들이 행복해야 더욱 행복한 것이.
시련이 곧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단초가 된다는 것을 김 씨는 다시한번 느낀다. 그래서 아침을 열면 으레 봉사를 마음에 담는 김 씨다.

◇봉사활동, 교회예배가 생활의 전부
봉사하고 교회 나가 예배드리고 그가 사는 생활의 전부다.
앞으로 희망을 묻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한마디로 노인들의 안위가 전부다.
“한국이 복지가 더욱 발전하면 좋겠어요. 독거노인들이 더욱 안락하고 고생스럽지 않게 돌보아주는 것이지요. 그만큼 예산도 늘어나야 하고요. 저보다도 안쓰러운 노인들이 처처에 많은 것을 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눈으로 보지만 마음으로 보는 비결을 그는 갖고 있다. 그래서 그의 눈에는 늘 고생하는 노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의 걱정은 어려운 환경 속의 노인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봉사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온 김 씨는 그래서 행복은 어디에나 널려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으로 행복을 못느끼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그는 한 마디 건네고 싶다.
“봉사를 해요. 그러면 마음에 행복이 가득 찰 테니.”
어렸을 적 농사짓는 집안의 7남매 형제들 사이에서 가장 귀염 받는 막내딸로 컸다. 벌써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목이 메는 김씨는 “그래서 더욱 노인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는 것인지도 몰라요.”라고 말한다.
“황선은 소장님은 봉사센터 분위기를 너무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어 고맙지요. 그리고 그 힘으로 운영을 잘해나가시고요. ‘수고 한다’ ‘잘 해보라’는 등의 칭찬을 아끼지 않아요. 그게 힘입니다.”
지난 23일 속리산 법주사 주최 ‘불교 페스티벌’ 행사 때 17명이 투입, 4시간동안 설거지 봉사를 했다. 날씨는 추웠지만 아무도 할 사람이 없어 고스란히 자원봉사센터회원들의 몫이 됐다.
그는 그만큼 수상 경력도 많다. 자원봉사상인 국무총리상(메달), 시어머니를 잘 모신 화목가정상, 그 외에 충북도지사상, 군수상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나이에 비해 아름다운 치아를 가졌다는 ‘아름다운 치아상’ 등 빼곡이 박힌 수상들의 흔적이 그의 삶의 행복 바이러스다.
사람들이 그래요. “저를 보면 인생에 도전을 받는다고요. 그리고 행복해 진다고요.”
매년 식당 등에서 열어온 ‘독거노인 경로잔치(5월 11일 30명 예정)’를 특히 올해부터는 자원봉사센터 2층에서 갖게 된다는 기쁨으로 그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벌써부터 가득하다.
/천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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