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니라 손으로 칼을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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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아니라 손으로 칼을 가는 거야”
  • 보은신문
  • 승인 2010.04.2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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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칼갈이 봉사 시각장애인 추찬혁 씨
“눈으로 보고 칼을 가나? 손으로 칼을 가는거지” 앞이 전혀 안보임에도 불구하고 2.0의 시력을 가진 전문가 못지않은 능숙한 솜씨로 칼을 잘 가는 사람이 있어 주위의 시선을 이끄는 사람이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보은군 회인면 갈티리에서 칼갈이 봉사(奉仕)로 불리는 시각장애 1급을 가진 추찬혁씨(71).
요즘 칼갈이 보기가 정말 어려운 시기에 속리산의 아주 작은 산골마을인 회인면 갈티리에서는 주방에서 쓰는 칼이나 농사철에 없어서는 안 되는 낫 등이 무뎌져 쓰기가 곤란하면 마을주민들은 언제나 앞이 전혀 안보이는 그에게 칼을 갈아 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무뎌진 칼이 그의 손에 쥐어지면 어느새 대장간에서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새 칼보다 더 잘 드는 칼로 바뀌니 칼갈이 도사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다.
그의 칼갈이는 돈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마음만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마을에서 칼갈이 봉사로 불린다.
칼갈이 봉사는 앞을 보지 못하는 봉사가 아니라 남을 위해 무료로 칼갈이 봉사(奉仕)를 한다고 해서 마을사람들이 그에게 지어준 별명이다.
마을이장인 설인선씨(50)는 “우리마을 주민은 낫과 칼을 사게 되면 좀체로 바꾸지 않는다”면서 “칼날이 무뎌지면 언제든지 추찬혁 어르신에게 칼을 갈아달라고 부탁드리면 한번도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어느새 새것 보다 더 좋은 칼로 만들어 주니 장에 가서 새 칼이나 낫을 살 필요가 없지 않냐”고 그의 솜씨를 치켜세웠다.
또 설씨는 “그분은 앞이 전혀 안보이지만 만능재주꾼” 이라며 “토종꿀을 키우는데 꿀통도 스스로 제작하고 몸이 불편한 아내를 대신해 집안수리까지 한다”고 말했다.
처음 그를 보는 사람은 그의 칼 가는 모습을 보면 앞이 전혀 안보이기 때문에 칼에 손이 베일까봐 마음을 졸이면서 보는데 반해 오히려 그는 웃음을 머금은 채 능숙한 솜씨로 칼을 쓱싹쓱싹 잘 간다.
그에게 앞을 못 보는 불행이 찾아온 건 5살이 됐을 무렵 갑작스럽게 찾아온 홍역 때문이었다.
그의 집은 시골의 가난한 집안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은 고열에 시달리는 그를 보고도 병원비가 없어 집에서 간호만 하다가 결국 그는 홍역에 의한 고열로 눈이 멀게 됐다.
그는 “어린시절에는 홍역으로 죽는 아이가 비일비재(非一非再) 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였기에 내 운명이라 생각하면서 살았다”며 “비록 눈이 멀었지만 멀쩡한 두 손이 있어 이렇게 칼까지 갈 수 있어 항상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면서 웃음을 지었다.
앞을 못 보게 된 그가 처음으로 칼을 갈게 된 건 10살 무렵이었다.
“10살 때였어. 어느 날 아버지가 마당에서 낫을 갈고 있었지. 물론 보이지는 않았어. 그 전에도 앞마당에서 쓱싹쓱싹 아버지의 낫 가는 소리가 자주 들렸지. 7살 무렵 마당에서 그 소리가 나기에 아버지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 숫돌에 낫을 갈고 있다고 그러셨지.
그래서 그때 칼 가는 소리가 어떤 것 인 줄 알게 됐어. 그전에는 칼 갈 엄두를 못 냈는데 그날따라 왠지 호기심이 발동해서 낫을 갈아보고 싶더라구. 아버지가 처음에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는데 내 고집이 황소고집이거든. 처음에는 낫이 날카로워 겁이 났지만 숫돌과 마찰하며 갈아지는 칼의 소리가 그렇게 좋더라구. 아버지가 처음으로 나를 칭찬했어. 칼을 기가 막히게 갈았거든. 그래서 그런지 칼 가는 건 일이 아니라 취미가 돼버렸어. 그때부터 칼 가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지” 라며 어린시절을 회상하였다.
그는 “남들이 보기에 칼 가는 것이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일”이라며 “내가 갈아준 칼이 너무 잘 든다고 고맙다고 할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내가 비록 앞을 못 보는 봉사지만 힘이 있는 한 여생을 이웃을 위해 봉사(奉仕)하면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그는 지난 3월 초부터 보은군에서 시행하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군 시각장애인 협회장(황호태, 50)의 추천을 받아 칼 가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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