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렸을 때의 정월 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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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렸을 때의 정월 대보름
  • 김정범 실버기자
  • 승인 2010.03.0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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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은 설과 함께 세시명절로 지켜 오고 있다. 정월대보름의 유래는 확실치는 않으나 신라 21대 소지왕 때의 사금갑조(射琴匣條) 설화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사금갑조란 소지왕이 정월보름 날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행차 할 때에 까마귀가 봉서를 주었는데 겉봉에 이 봉서를 뜯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뜯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라고 씌어 있어 왕은 뜯어보지 않으려 하였으나 신하들이 한사람은 왕을 지칭 하는 것이니 뜯어보라 하여 뜯어보니 궁에 가서 거문고 갑에 활을 쏘라 하였다. 적혀 있는 대로 거문고 갑에 활을 쏘니 그 뒤에서 왕비와 내궁 승려가 정을 통하며 왕을 죽일 음모를 하고 있었다. 왕은 까마귀에게 은혜를 입었다 하여 이 날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찹쌀로 약밥을 만들어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아마도 정월 대보름처럼 픙습이나 민속 행사가 많이 있는 명절도 없을 것이다. 요즈음은 많이 잊어지고 있으나 한 해의 복을 비는 것을 비롯하여 무사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여러 가지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부스럼을 예방하기 위한 부럼깨기, 힘을 저축하고 한 해의 풍성함을 기원하는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을 먹는 것, 아침 일찍 찬 술 한잔을 마시어 귀를 밝게 한다는 귀밝이 술(耳明酒), 그리고 여름 더위를 쫒기 위하여 내 더위팔기. 복을 걸러 담기 위한 복조리, 등은 아직도 흔히 행 해 지고 있는 것 들이다.
지방 마다 차이는 있어도 이 밖에도 윳놀이, 널뛰기를 비롯하여 많은 풍습이 있으나 어릴 때 기억으로는 작은 보름(열나흘)이 되면 머슴들은 이 날 나무를 아홉 짐을 해야 되고 밥도 아홉 그릇을 먹어야 하는데 저녁은 해가 지기 전 일찍 먹어야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잊혀 지지 않는 것은 이 날 밤에 동네를 돌며 밥을 훔쳐 먹던 일이다 모두가 먹고 살기 힘 든 때였지만 어느 집에 가면 일부러 밥을 해서 식지 말라고 밥솥에다 물을 데워서 담가 놓고 동네 아이들이 가져가기를 기다렸다가 소두방(솥뚜껑) 여는 소리가 들리면 헛기침을 하여 놀라게 하면 우리는 가지고 간 소쿠리에 얼른 밥을 쏟아 달아나곤 하였다. 또 이 날은 일찍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여서 밤늦도록 자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그러나 그때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라디오조차도 잘 모르던 때였으니 어린 내가 늦도록 자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보름날 아침에 일어나니 막내 누님이 너 눈썹이 쇠서 큰일 났다며 어머니를 부르고 야단이다. 어머니도 이일을 어쩌면 좋으냐고 덩달아 걱정을 하시기에 거울을 보니 정말 눈썹이 하야케 되었다. 잘 때에 누님이 밀가루를 반죽하여 칠 해 놓은 것을 모르고 그만 엉엉 울어 버린 적도 있다.
보름날에는 겨우내 가지고 놀던 연을 날리다가 줄을 끊어 날려 보내면서도 아쉬움에 다시 그 연을 잡으려고 쫒아가다가 넘어져 무릎을 깨기도 하였고 저녁이 되면 깡통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서 숱과 마른 나뭇가지를 담아 불을 붙혀 휘돌리며 놀았는데 이것이 쥐불놀이 이다. 커다란 논 한복판에서 아이들이 휘돌리던 깡통을 높이 던지면 쏟아져 내려오는 불꽃은 요즈음 하는 불꽃놀이보다도 더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마을 형들을 따라 다니며 냇물을 사이에 두고 횃불싸움을 하던 기억들은 아마도 잊지 못할 어릴 적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월대보름은 풍년과 복을 비는 일이었다. 서낭에 떡을 한 시루 해다 놓고 촛불을 켜 놓고는 마을 어른 한 분이 하얀 미농지조각을 불살라 올리며 집집마다 한 해의 행운을 기원하는 소제를 올린다. 불살라진 재가 높이 오를수록 기원한 복이 많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나는 별 흥미를 느끼지는 못 했지만 소제가 끝난 뒤 개구쟁이들이 떡을 몰래 가져다가 먹던 일도 생각이 난다.
요즈음은 볼 수 없는 것들이 되고 말았지만 이런 것들이 60여 년 전 나 어렸을 때의 정월대보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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