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보은군의 독립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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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보은군의 독립투사
  • 이흥섭 실버기자
  • 승인 2010.01.2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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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군의 독립투사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묻혀 가고 있다.
김창복은 보은과 서울을 오가며 종로에 영창 학교를 중심으로 군자금을 조달하여 임시정부에 보내는 역할을 했다고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김창복은 1930년경 산외면 문암리 종곡리에서 보은군 담배공사 자금관리 책임자로 담배 자금을 농부들에게 주지 않고, 자금 전액을 독립군 군자금으로 보내고 빚을 얻어 형을 보증인으로 새우고 자금을 돌리다가 사기꾼 소리를 듣고 이리 저리 불려 다니다가 바지에까지 보증 도장을 받아야 하자 김창복은 고향을 떠났다.
그 후 그는 종로에서 영창 학교(지금의 YMCA)를 운영하여 돈을 벌어 보증인이 되어준 김수권에게 돈을 갚고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양화부를 운영하면서 고향 친지들을 데려다 청량리에서 서울역까지 취직을 시켜 모은 돈을 군자금으로 보낸 것이다.
김창복의 선친도 애국심이 강한 분이였고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신체가 장대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때로는 외인으로 때로는 건달로 사업가로 변장술에 능수능란하여 일본 형사를 따돌리기도 하고 조선이 해방될 때까지 음지에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일하신 분으로 최초에 보은군에 전기를 들였던 지역을 발전시킨 숨은 독립운동가였던 것이다.
김창복은 조국 광복을 위하여 일하시다가 처자식도 돌보지 못하고 인척 집을 전전하였다.
그는 선친의 엄격함과 기질을 닮아 뜻있게 세상을 살다가 떠나셨다.
/이흥섭 실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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