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장미 52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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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장미 52송이
  • 김충남 실버기자
  • 승인 2009.12.3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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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기념일에는 남편이 부인에게 결혼 횟수대로 장미꽃 선물을 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12월 26일이 52송이의 장미꽃을 받았으면 하는 기대를 해보는 날이다. 남편은 아침 일찍 나가고 하루 종일 집에서 환상의 장미꽃다발을 받아 안고 향기를 맡으며 기뻐한다. 꿈 인줄 알면서도 기분 좋은 날이다.
52년 전 그 날을 다시 생각해 본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식을 한다고 일가친척이 다모여 야단법석이다. 그때는 전통 혼례식을 모두 하는데 교회에서 신식 결혼식을 한다고 구경꾼들이 아주 많이 왔는데 집안 어르신께서는 무슨 결혼식을 신식으로 하면 족두리를 쓰지 않아 못된 것이라고 야단을 하시고 그런 와중에 나는 교회로 친구들과 결혼식을 하러갔다. 지금은 신부대기실이 있지만 그때는 교회 곁에 있는 어느 집에서 대기했는데 신랑이 온다고 문종이로 바른 문을 손가락에 침을 발라 구멍을 내고 내다본다. 나도 신랑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구멍으로 내다보았다. 낯선 남자 셋이 들어오는데 맨 앞에 들어오는 사람이 신랑인줄 알았다. 눈이 크고 빼빼마르고 이상하게 생겼다. ‘왜 신랑이 저렇게 생겼어 중매 하는 집사님이 미남이라고 했는데... 거짓말 했나?’ 하고 생각하는데 신부 입장이라고 빨리 나오란다. 그렇게 엉겁결에 신부 입장을 했다. 그때는 신랑이 친구 두 사람, 신부 친구 두 사람 앞에 애기 남·녀(화동) 두 사람을 세우고 꽃가루를 뿌리며 입장을 했다.
 주례사는 길고 신랑 친구가 축사를 한다. 큰 두루마리 하나를 들고 나와 줄줄 펴면서 읽어 내린다. 성탄절 뒷날이라 너무 피곤했다. 앞에서 화동들이 오줌을 싸서 내 치마가 젖었다. 그렇게 결혼식을 마치고 그 날 밤은 친정에서 자고 아침에 신랑 얼굴을 보니까 어제 문구멍으로 본 그 남자가 아니다.
이렇게 웃지 못할 사연을 안고 52년을 살아온 오늘도 환상의 장미꽃을 보면서 그 향기 속에 꿈을 꾸며 건강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52년 동안 살면서 장미는 한 송이도 못 받았지만 스스로 향기를 만들고 느끼며 남은 인생 향기롭게 살련다.
/김충남 실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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