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문에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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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문에 자랑
  • 이흥섭 실버기자
  • 승인 2009.11.2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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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나이에 피난처가 되는 살골 안북실로 우직한 남편(김양희)에게 시집을 와서 눈문의 고통 가운데 4형제 자녀를 낳고 80여생(83세)을 흙과 더불어 싸우며 살아왔다.
본인은 38대 경순왕 판조판서 사인공파 후손가문의 엄격한 양반 행세를 하는 가문이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허둥대며 살다보니 그 무엇들이 보람인지 모르고 살아왔는데 요즘 서울에 계신 큰서방님(김각희)께서 선친(김창복)의 허신의 공로를 찾고자 고향인 보은. 산외. 문암 등 선친들의 묘에 있는 비석에 새겨진 증거자료들을 직접 확인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단한 노력을 하시면서 형님 내외분의 협조를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줘야 한다고 생각이 외어 연필을 들고 밝히고자 한다.
내가 안북실로 시집을 와보니 막내 외동딸로 자라신 고모님께서 집안 가문에 대하여 늘 전해주시는 가운데 손을 보기위하여 산을 넘어 보은, 산외면, 문암리(곱냉기)로 조부께서 이사를 오려 3남매를 낳으셨으며 엄함 호랑이 별명을 갖고 계신 할아버님께서 한번 호령을 하시게 되면 날아가는 새도 땅에 떨어졌다는 소문들이 자자할 정도였다.
더욱이 침략자인 일본인들의 만행에 투쟁하시다가 화병으로 돌아가시게 되니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17세의 키가 장대한 작은아버님(김창복)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독립 투쟁 자금으로 보내셨다는 비밀 소문과 3총사를 결성하여 일본인들을 압도하기 위해 일본으로 직적 가서 일본의 심장부를 다양하게 검토·체험 하시었다.
조카들을 데려다가 공부를 시키며 양화부를 거점으로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싸우며 다양한 상해로 보내는 독립자금 마련에 몰두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바가 있다.
이러한 훌륭하신 조부님과 작은아버님의 산외면 문암리에 자리한 묘를 금년에 종곡 안북실로 이장하여 비문의 증거가 살아있음을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후손들은 그 비문에 새겨진 증거를 본받아 이나라와 민족 대대손손이 더욱 훌륭한 후손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흥섭 실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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