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오가는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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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오가는 장터
  • 보은신문
  • 승인 2000.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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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영 녀 (보은 교사, 전 삼산어린이집 원장)
오랫만에 한가하게 들른 장터, 비릿한 생선냄새와 밭에서 막 내온 싱싱한 채소와 과일들이 더욱 여름의 중간에 와 있음을 알린다. 후덥지근한 날씨지만 확 달아오른 시장 분위기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옷 더미에 올라앉아 연신 골라골라를 외쳐대는 아주머니의 기운찬 목소리가 시장안을 휘젓는가 하면 한쪽 어귀에선 가뭄에 물맛을 보지 못한 것 처럼 모양조차도 어정쩡한 호박 몇 덩이, 오이 몇개로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할머니의 낡은 함지박과 헐렁한 바지춤에 매어져 있는 땟국물로 절은 앞치마 속을 가득 채운 지폐로 신나있는 어느 아저씨의 벌어진 입술사이로 새어나오는 걸죽한 입담 …

눈을 허옇게 뜬 채로 죽어서도 펄펄뛰는 생선으로 대접받는 좌판대 위의 생선들. 순대 한 접시를 가운데 놓고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정담을 나누는 할아버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 하나에서 옛맛을 찾는 아주머니들. 이 모든 살아있는 풍경 들이 가까운 마"을 제쳐두고 번번히 시장을 찾는 이유중의 이유 일 것이다.

한푼도 "지도 못하고 컴퓨터에서 토해 놓는 영수증의 야박함이 없어서 좋고, 덤으로 얹어주는 한 줌의 인정이 장바구니에 그득하게 채워져서 좋은 곳. 운이 좋은 날에는 천원짜리 지폐 몇장으로도 상점물건보다 훨씬 나은 진짜 알맹이를 구할 수 있어서 좋은 곳이 우리네 시골 장터가 아닌가? 뭔가 쉽사리 풀리지 않는 일로 신경을 곤두세울때면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지폐 몇장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장터에 나가 보자.

때로는 등줄기가 축축히 젖어 오기도 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저마다의 모습에서 금새 기분이 달라지지 않을까? “아주머니! 이것 싸게 줄께 떨이 좀해 가유” 한사발 정도 남은 올갱이를 떨이 해 가라는 주름살 깊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웬지 당신의 힘겨운 인생 마저도 떨이 해 가라는 의미로 다가와 선뜻 셈을 하지 못하게 했던 것도 함지박 위로 떨어진 한점 석양빛 때문만은 아니리라.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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