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속리산 등반 600회, 올해 700회 세우겠다
한국 사회에서 노령을 65세로 기준하고 있다. 그러나 노령수당을 지급하는 기준인 65세 사람에게 노인이 맞느냐고 묻는다면 과연 몇 명이 맞다고 답할까?아마도 나이가 65세인 것은 맞지만 노인이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는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맞다. 65세를 노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 젊은 노인들이 많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강준규 전 교장도 노인이라는 사회적 통칭을 순순히 인정하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하는 노인이다.
숫자상 나이는 74세이다. 일반적으로 퇴행성 관절염 등으로 걸음걸이가 불편할 수 있는 나이지만 그의 피부나 심폐능력, 걸음걸이 등 신체적 건강도로 보면 74세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머리만 샜을 뿐 오히려 60대 장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 강준규 교장과의 만남
강준규 전 교장과의 인연은 속리산 문장대 등산로 중에 있는 용바위 골 휴게소 덕분이다.
휴게소 밖에 플래카드가 하나가 걸려있었는데 플래카드를 내건 주체는 회인향우회였고 내용은 2005년 12월31일 ‘아산 강준규 회장 속산 600회 등반 국내외 명산 1300회 등반 기념’이었다.
용바위골 휴게소 측에 문의한 결과 회북 애곡 출신의 70대 노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매주 2회 등반을 하는데 수요일은 예외없이 등산하고 나머지 하루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하는데 주로 토요일에 하고 점심식사를 용바위골 휴게소에서 한다는 정보를 전해줬다.
그리고 기자도 등산을 할 겸 지난 4일 토요일, 허탕을 칠 것을 무릅쓰고 점심시간을 도착시간으로 해서 용바위골을 목표로 무조건 산행을 했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 사전 약속없이 무작정 속리산을 찾은 기자는 마치 사전 약속을 했던 것 처럼 주인공인 강준규 교장선생님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모자를 썼지만 74세로는 보이지 않았다. 늘어진 살 없이 탄력있는 피부에 웃음 주름살만 살짝 짓는 천진난만한 표정, 그러나 대단히 단단해 보이는 용모였다.
운동 앞에, 자기를 가꾸는 정성 앞에 세월도 빗겨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했다.
# 속리산 등반 올해 700회 계획
회인초등학교 6학년때 졸업여행지로 처음 속리산을 등반한 후 20년 전부터 매주 2회씩 속리산을 찾는 속리산 마니아가 됐다. 교편을 잡고 있을 때에도 매주 거르지 않고 속리산에 강준규의 흔적 남기기는 계속됐다.
속리산 대형버스 터미널에서 시작해 문장대까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정규 등산코스 외에 자신이 개발해 놓은 비정규 등산코스를 날다람쥐 같은 속도로 등산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둥이 쳐도 어김없이 속리산을 올랐다. 비가 오는 날은 ‘우중훈련’이라고 하며 등산했고, 눈이 오는 날은 ‘설중훈련’, 심지어는 ‘야간훈련’이라며 야간 산행을 감행했으며 아무도 밟지 않은 속리산을 처음 밟는 ‘신설초보(新雪初步)’를 무려 일곱 번이나 했을 정도로 산행에 대한 의지와 끈기, 집념이 대단했다.
단순히 건강을 다지기 위해 속리산을 찾은 것이 97년 봄 100회를 기록하고 100회 등반기념으로 기념식수한 주목은 지금 자신의 키보다 훌쩍 커 보기 좋게 자라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기록은 200회로 이어지고 다시 300회, 400회 등 산행 기록을 계속 갱신하자 욕심이 생겼고 지난해 말 600회를 기록했고 용바위골 휴게소에서 동료 등산가와 향우회원, 가족들과 함께 기념 파티를 가지기도 했다.
올해는 10월말 또는 11월초까지 700회를 등반한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사실 속리산 등반목표는 1000회란다. 결코 불가능하지 않은 목표란 것을 인정했다.
속리산을 오를 수록 그의 건강은 더욱 단단해졌고 위궤양으로 인해 한 번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정말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신체나이는 거꾸로 먹고 있었다.
수 십년간 수요일과 토요일 청주시 남부 터미널에서 아침 7시40분이면 어김없이 속리산행 버스에 오르는 강준규 전 교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산 사랑만큼 부부애도 애틋
매사 긍정적이며 낭만주의자로 올해로 결혼 41주년인 강준규 전 교장은 부인 변금명(67)씨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다.
청주 사범학교를 나와 1953년 처음 회인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후 98년 청주 남성초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그는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교단에 서 평교사부터 교감, 교장까지 지냈고 한벌 초등학교에서 그의 말년 애인이 된 부인 변금명 교사를 만났다.
'서울의 번화한 거리가 아니라도 좋소.
번듯한 세간이 아니어도 좋소.
아궁이엔 사철 연탄불이 꺼지지 아니하고
집안엔 항상 당신의 미소가 샘물처럼 그치지 않는다면
여기가 바로 우리들의 낙원이요.’
신혼 초 신랑 강 교장이 써준 이 글을 지표로 삼은 신부 변금명 교사.
퇴근길에 부인의 피아노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면 “남편을 기다리는 세레나데여!”라며 즐거워했던 낭만주의자 신랑 강준규 교장.
이들은 지금껏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욕심과 허영, 사치를 다 버리고 돈독한 삶의 정을 나누며 늘 신혼같이 41년을 살고 있다.
94세의 건강한 노모를 잘 봉양하고 있는 효부이기도 한 그의 부인은 피아노가 수준급이고 틈틈이 민요와 소리장구, 고전무용, 수지침, 탁구 배드민턴 등을 배워 발표회에도 출연할 정도라고 한다.
천주교 신자로 ‘성심봉사회’에서 재가복지노인 위로공연, 노인 병원 위로공연, 꽃마을 청소 등 봉사활동도 활발히 벌이고 있는 이들 부부의 1남2녀 중 막내딸이 수녀이다.
# 재청주 회인향우회장
45년 교직기간동안 평교사로 모교인 회인초교에서 4년, 수한초교에서 2년간 교감으로 재직한 것이 보은에서의 근무는 전부이지만 고향사랑은 대단하다.
고향 회북 애곡에는 현재 가까운 친척은 없지만 선대산소가 있어 가끔 찾는다는 그는 청주에 거주하는 회인 사람들의 모임인 향인회(회인향우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자주 이들과 만남을 가지며 애곡리에서 4㎞를 달려 회인 초등학교에 닿던 일 등 고향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고 고향사랑을 키운다고 한다.
수구초심이라고 했던가. 고향 얘기를 하는 그의 마음은 어느새 고향 회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1년 100회이상 속리산을 찾아 이젠 지겨울 법도 하지만 조건 없이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무조건 명산 속리산을 가장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이해됐다. 그리고 1000회 등반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그를 다시 만날 것이 벌써부터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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