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훈(家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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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훈(家訓)
  • 보은신문
  • 승인 1995.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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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읍장 김건식씨
지난 11월3일 가훈전시회가 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우리 읍에서도 이 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하여 읍민을 대상으로 가훈을 수집했는데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우선 읍직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 90여명의 직원 중 가훈이 있는 사람이 대여섯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던 막내딸이 어느 날 불쑥 나에게 우리집 가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숙제라는 것이다.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일찍이 집안 어른들로 부터 조상들이 '안빈(安貧)과 수분(守分)'을 지켜 청빈하게 살아오셨다는 말씀을 들으며 켜왔고 내 자신은 스스로 '덕불고·의불사(德不孤·義不死)'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으나 나이어린 딸에게 이 어려운 말을 우리집 가훈이라고 이야기해주기에는 너무나 설명이 길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기억난 것이 국교 졸업일반일때 학급훈이었다. '스스로 행하며 끝까지 다하자'였다. 딸아이의 성화에 못이여 붓으로 크게 써 책상앞에 붙여준 일이있다. 그뒤부터 우리집 아이들은 이것을 가훈으로 알고 자라왔다.

만세의 스승이신 공자께서도 아들 이(理)가 뜰에 뛰어가는 것을 불러 세운 후 시(詩)와 예(禮)를 읽도록 훈계한 것이 자녀교육의 전부라고 했고 나 또한 자녀교육은 부모 자신이 모든 일에서 수범을 보이는 것이 곧 교육이라고 믿었기에 특별히 가훈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지냈다. 이제 아이들이 모두 성장하여 아비가 써주었던 가훈이 우리집 가훈이 아니였음을 알고있으며 지금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집안의 가풍을 이야기로 전해주고 있다.

가훈이란 한 집안의 교훈, 선조의 유훈으로 가계(家誡), 정훈(庭訓), 가규(家規), 가범(家範) 이라고도 하며 그 가정의 윤리적 지침으로서 가족들이 지켜야할 도덕적인 덕목을 간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남북조 시대의 '안씨가훈(顔氏家訓)'이 대표적이고 송나라때의 '주자가훈(朱子家訓)'은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유신집안의 '충효'와 최영집안의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가 잘알려져있고 신사임당의 '신의·지조·청백·성실·우애' 그리고 이언적의 '근검과 절약'이 이이(李珥)의 '화목과 우애'와 세중임금이 이정간에게 친히 써준 전의 이씨 집안의 '가전충효·세수인경(家傳忠孝·世守仁敬)' 은 오랫동안 그들 집안의 생활신조로 이어졌던 대표적인 가훈들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있는 가문으로서 가훈이 없는 집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보편화되었던 것으로 가족 구성원이나 후손들이 올바른 마음가짐과 생활태도로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이웃과 함께 화목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규범을 그집안 가풍에 알맞도록 집약하며 만들었던 것이다. 가정은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것이므로 자녀들이 사회를 보는 눈은 가정에서 형성된 가치관을 통해서 길러지게 된다. 따라서 가훈은 사회의 윤리에 우선하는 것이며 사회교육에서 기대할 수 없는 독특한 교육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슬기로운 우리 조상들은 제각기 개성있는 가훈을 만들어 자녀를 올바르게 키워왔으나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전통사회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가훈은 몇몇집안에서 전수되고 거의가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보면 가정교육의 포기가 아닐까? 엉클어질대로 엉클어진 지금의 우리현실은 조상 대대로 전수되었던 가훈을 소홀히 취급한 우리모두의 책임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자! 이에 우리 제 정신을 찾아야한다. 시대발전에 맞춰 가훈을 만들자. 그리하여 우리의 전통을 되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나도 머지않아 태어날 3세를 위해 현실에 맞는 가훈을 만들어 크게 써붙여야겠다. 이제 나도 철이 나는가 보다.


<생각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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