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숲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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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숲 유감
  • 보은신문
  • 승인 1996.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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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중부매일 논설위원)
속리산 주차장에서 내려 일주문을 거쳐 법주사에 이르는 '오리숲'은 속리산의 초입에서 마주치는 얼굴이다. 계절을 따라 옷을 갈아 입고 길손을 반기는 오리숲은 속세를 떠난 속리산의 길목을 시시때때로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며 안내해 준다.

특히나 여름철이면 상수리 나무에서 쓰르라미가 여름한낮의 긴 자락을 씻어낼 듯 울어 젖히고 늙은 조선 소나무에서 솔솔 배어나오는 알싸한 솔향기는 속세에 찌든 뭇사람의 가슴을 파고들며 영혼을 헹구어 낸다.

어디 이뿐인가. 터널 모양으로 하늘을 가린 솔가지 사이로 도토리를 물어 날으는 날다람쥐가 줄을 잇고 어쩌다가 길을 잃은 산토끼가 놀란 두 눈을 지켜 뜨고 가븐 숨을 할딱거리던 추억의 오솔길이었다. 다북솔이 수북히 흩어진 오리숲에는 솔방울과 토끼총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이따금 불거져 솟은 바위와 돌뿌리는 성급한 길손의 발걸음을 잠시 묶어 두었다.

보드라운 흙의 감촉과 태고의 신비를 호흡하며 다정스레 걷던 오리숲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다. 너무나 변한 모습으로 다가온 숲이름은 그대로되 내마음의 오리숲은 없다. 되지않게 산업화의 흉내를 내어 싸구려 화장품을 마구 발라놓았으니 산중의 고고함이나 자연의 흙냄새는 찾아볼 길이 없다.

아스팔트로 말끔히 포장된 이 길을 다시 걷노라면 문명과 산업화의 역기능에 메스꺼워질 뿐이다. 어떤 때는 높은 분들의 승용차 행렬이 걸어가는 사람들의 틈새를 헤집고 휘발유 냄새를 뿌린다. 보행자에게 미안하다는 기색도 별로 없다. 문명의 비극이다. 문명이 싫어 피난온 사람들이 산사에서 마저 또 문명앞에 괴로움을 당한다.

자연을 살육하는 문명이 밉지만 더 미운것은 자기네의 편리만을 생각하고 되잖게 문명과 결탁하는 사람들이다. 제발 자연을 그대로 두어라. 오리숲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상수리 나무가 숨쉬게하고 다시금 다북솔이 흩어진 옛길을 되밟게 하자. 그리하여 문명의 찌꺼기가 싫어 달아난 날다람쥐가 뛰놀게 하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흙냄새를 다시 맡게 하자.


<생각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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