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역사 바로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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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 역사 바로알기
  • 보은신문
  • 승인 1996.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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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중부매일 논설위원)
뙤약볕이 내리 쬐던 작년이맘때, 나는 마로면 관기리 마을 뒷산을 숨가삐 올랐다. 고분에 대한 도굴이 심각하다는 보은 모 고교 체육교사의 제보를 받고 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야산 중턱 구릉지대에는 삼국시대의 고분이 즐비했는데 그 교사의 말대로 도굴이 꽤나 심한 편이었다.

6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은 벌집처럼 호리꾼의 도굴침을 수도없이 맞았다. 현장에는 도굴갱과 도굴당시 부서진 경질토기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충주 누암리 고분처럼 고구려 계통은 아니나 어딘지 모르게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듯한 석실분과 돌널무덤이 대부분이었다.

막돌로 석실을 쌓는데 마치 서양건축의 돔처럼 무덤위로 갈수록 좁아지면서 마무리하는 '궁륭형' 무덥이다. 나는 문화재 훼손현장을 취재해 대서특필했으나 군당국은 무표정한 반응이었다. 이 일대의 고분이 비지정문화재라서 이렇다할 보호대책이 취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관계당국에서는 이 고분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데다 그 정확한 실태마저 모르고 있었다.

내고장 문화재를 내가아끼지 않으면 누가 아낄것인가. 나는 이 고분군 훼손실태를 취재하며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식히느라 한참 애를 먹었다. 외국에서는 별것도 아닌 문화재를 가지고 난리법석을 떨기 예산인데 우리네는 중요한 것을 손에 쥐고도 귤인지 탱자인지 구별조차 못하고 헤매고 있다.

허구헌날 속리산에만 목줄을 대고 있을게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소중한 조상의 빛난얼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종곡리는 동학농민의 최후항전지요 외속리면 장내리는 동학 농민전챙의 전주곡이 됐던 동학교도의 집화장소였다. 타도에서는 동학농민전쟁반발 1백주년을 기념해 전봉준 생가를 복원한다, 격전지인 우금치를 사적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등 푸짐한 기념사업을 벌였는데 충북도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다.

충북의 동학운동은 인근의 충남이나 전라도 못지않게 활발한 양상을 보였음에도 그 후예들의 무관심과 단편적인 사고방식에 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내고장 역사 바로세우기'를 스스로가 포기한 까닭이다. 삼년산성과 더불어 주변의 역사 유적과 문화재를 알뜰하게 가꾸고 보존한다면 보은의 긍지를 한껏 높이고 이를 관광자원화 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으리라 본다.


<생각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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