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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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사람
  • 보은신문
  • 승인 1996.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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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우(국사편찬 조사위원)
6월을 '호국의 달'이라 하는 건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목숨을 잃은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혹여 세월의 풍상은 그때의 사람들을 잊을 수도 있으련만, 묘비를 어루만지며 흐느끼는 많은 사람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때로 아주 오래된 일기장이나 수첩같은데서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는 이름들을 발견한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몇 사람 쯤 있을테지만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자식으로서 부모의 임종을 지킨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운명을 마주한 부모의 마지막 손을 잡아드리는 것이 야말로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할 수 있는 효중의 효라 아니할 수 없다.

신 대위!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에게 더욱 감사한다. 십 수년전 휴가를 마친 나는 어깨가 축처져 부대로 돌아왔다. 암으로 투병중인 아버지께 차마 인사도 못하고 입원실 문을 닫았던 것이다. 이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라니... 돌아가셨다는 과보나 기다려야하다니... "남 상병! 무슨 일 있나?" 중대장은 나를 불렀다.

나는 아버지의 병환을 말씀드렸고, 중대장은 자신이 겪는 고민을 이야기 했다. 그는 군에 몸을 담아야할지 전역을 해야할지, 전역을하면 무슨일을 해야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중이었다. 휴가를 다녀온지 20여일 지났을 때 '송년의 잠' 행사에서 우리 중대가 1등을 해휴가증 석 장을 받게되었다. 그런데 중대장은 특별히 한 일도 없는 내게 휴가를 가라는 것이었다.

떠밀리다시피 나온 휴가. 부랴부랴 병원으로 갔더니 아버지는 이미 회생이 어려워 집으로 돌아와 계셨다. 가족들도 다 와서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이튿날, 아버지는 다시 뵐 수 없는 먼길을 가셨다. 휴가아닌 휴가를 마치고부대로 돌아왔다.

중대장은 전역을 신청했다며 이번에 날 휴가보낸 일이 7년여의 군 생활 중 가장 보람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와도 헤어졌다. 그때는 그분의 고마움을 지금처럼 알지 못했다. 아마도 그때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면 두고두고 마음이 무거웠으리라.

신 대위, 나는 영원히 그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훤칠한 키, 서늘한 눈매, 그 다정한 목소리를... 이런 노래가 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6월을 보내며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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