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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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사람들
  • 보은신문
  • 승인 1996.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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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우(국사편찬 조사위원)
신록이 무르익는 이 계절에 가까운 삼년산성이라도 가볼 양이면 진동하는 아카시아 꽃내음에 누구라도 금방 취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향기나는 것이 어디 아카시아 뿐인가.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이번 속리축전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예술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회 보은수석회원전.

보은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행사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자못 컷지만 평소 과일가게 아저씨로, 방앗간 아저씨로, 혹은 슈퍼 형님으로만 알고 지내던 그 분들이 자기만의 세계와 자기만의 향기를 갖고 있음에 나는 놀랐다. 묵향(墨香)! 열 두번씩이나 회원전을 연 관록의 보은서예협회다.

너나없이 바쁘신 분들 일테지만 자신의 향기를 검은 묵으로 담담히 드러내어 감동과 부러움을 샀다. 물론 우리는 그들의 작품 수준이나 한문으로 된 글의 뜻을 잘 알 순 없다.

그러나 글자 한 자에 온정신을 모았을 그들의 향기만은 맡을 수 있었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먹의 향기, 사람의 향기를. 향기로운 이들이 어디 그분들 뿐이랴.

요즘 수요일 오전에 문화원엘 가면 젊은 아낙들이 바이올린 연습에 여념이 없다. 지금 배워선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도, 변변한 소품한곡 연주하기도 어려우리라. 사실 아내도 거기서 바이올린을 배우지만 중고 바이올린 한 대로 신이났다. 때론 연주가 잘 안되어 속상해하기도 하지만 청아한 바이올린의 선율에 자신의 향기를 담는다. 이 박토(薄土)에 음악의 향기를 심는 성실한 교사.

얼마전 일본 공연을 다녀온 뒤 오장환문학전과 대추아가씨 선발대횟날 연주를 들어보니 그 실력이 부쩍 늘어났다. 그들 뿐이 아니다. 문화원을 도와준 많은 향토 기업인들... 출향인 단체들, 속보전을 전개한 사우회원들과 행사기간 내내 노심초사 성공을 빌던 문화원 가족들 모두가 보은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고향을 사랑하는 향기로운 분들이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자신의 향기를 감추며 산다. 또 생활에 여념이 없어 자신의 향기를 발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화란 참여하는 사람들만의 것이다. 우리들이 금새 수석인이나 서예가가 되진 못해도 그 향기는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도 그 덕분에 향기로워 질 수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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