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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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미소
  • 보은신문
  • 승인 1996.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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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중부매일 문화부장)
우리의 의식속에 외래문화의 찌꺼기를 스스로 털어내기가 그리 쉽지않은 모양이다. 퇴근 무렵에 '카페에 가서 한잔할까' 하면 좀 멋있어 보이고 '식당에 가서 저녁이나 먹을가'하면 와닿는 느낌이 그저 그렇다. 별 수 없이 '카페'는 프랑스의 식당 '카페테리아'인데 말이다.

팝콘과 옥수수 튀김도 그런 예에 해당된다. 외래문화의 중독과 서구지향적 시각이 가히 위험수위에 와있다. 세계적인 조각작품하면 대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떠오른다. 로댕보다도 훨씬 훌륭한 족각기가 우리나라에도 수없이 많았는데 이를 제쳐두고 하필이면 프랑스의 조각기가 생각날까.

우리나라에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작품이 수 없이 많다. 그게 바로 반가사유상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글자 그대로 반쯤 걸터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 성자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카피라성에서 출가하기 이전 고민하는 시탈타 태자의 모습이다. 인간의 생노병사를 헤아리는 성자의 깊은 사유와 이를 조각으로 형상화한 작품의 수준은 프랑스에서 조차 마스터피스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름없는 장인(匠人)이 남긴 금동여래반가사유상은 구텐베르그보다 앞선 금속활자 본 '직지심체요절'과 더불어 고대 한국 문화의 정수로 한국문화의 정수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여인의 미소하면 또 떠오르는게 '모나리자'이다. 우리는 이보다 더 신비로운 미소를 수천년 간직해 왔는데 정작 우리것은 잊고 서양의 미소만 동경해왔다.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서산마애삼존불(국보 제84호)의 미소는 참으로 신비롭다. 웃을듯 말듯 미소짓는 애기부처의 모습은 보는 각도에 따라 약간씩 느낌이 다르다. 바위에 생긴 이 천년의 미소는 비바람속에서도 변함없다.

당시의 장인은 부처의 외형적 모습보다는 침잠하는 내면적 세계 즉 '마음'을 돌에 새겼던 것이다. 단단한 화강암을 떡빚듯 했던 선인을 예지에 탄복 하며 마음속으로 되뇌여 본다. 우리것은 좋은 것이여…'


<생각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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