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라는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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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라는 마술
  • 보은신문
  • 승인 1996.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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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우(삼년산 동호회 총무)
'하늘에 걸린 무지개 바라보는 내 가슴은 뛰어라/ 어렸을때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며/ 늙은 뒤에도 그랬으며...' 청소년 시절에 많이들 암송하던 윌리암 워즈워드의 '무지개'라는 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요즘엔 무지개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서울이나 대도시 같으면야 대기가 오염되서 그렇다고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펑펑 굴뚝에서 연기 뿜는 공장도 몇 안되는 우리네 사는 청정땅에서 무지개를 잘 볼 수 없는 건 어른이 된 지금의 내 탓일 게다.

무지개란 희망 혹은 이상이란 말의 동의어에 다름아니다. 별반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내는 고단한 삶의 무게가 어른들에게 무지개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 건 아닐까… 지난해 6·27 선거가 끝난 다음다음 날인가? 가슴이 무너지듯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수 백명의 사람들이 아픈 사연을 만들고 떠나갔다. 그리고 몇몇의 젊은이가 기적처럼 웃으며 살아왔다.

그 아수라 속에서도 맑은 목소리로 말하지 않던가? 한번도 희망을 잃지 않아다고 노래도 불렀다고. 보은을 걱정하는 많은 분들은 말한다. '보은은 안된다'는 거다. 인구가 줄어서 안되고, 대학이 없어서 안되고, 고속도로 철도가 없어서 안되고… 친목 모임이건, 술자리건, 공공연한 자리에서건 그렇게 말한다. 아니 하다못해 고스톱판에서까지도 말이다. 고스톱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보은이 안되는 이유중 피부에 확 닿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한 사람이 있었다.

모 지방지 사회부 기자로 여러 시·군을 다녀본 캐리어이는 K기자. 보은에 처음 발령받아 며칠간 명망있는 인사들에게 부임인사를 다녔는데, 거의가 고스톱판에서서 만났단다. 전국 어디가나 고스톱인가 훌라인가 안하는데 없지만 보은은 너무 광적이란다. 그것도 훌륭(?)하신 분들이 더, 더, 더! 그래서 보은은 안되겠구나 생각했단다. 각설. 4월 11일. 국회의원 선거날. 아침일찍 투표를 하고 괴산에 있는 어느 산으로 등산을 갔다.

아름다웠다. 산의 모습이 천상 속리산 그림이었다. 보은의 기상이 여기까지 서렸구나 생각했다면 조금은 객기일까? 아무튼 그날 밤은 고단해서 일찍 잠이들어 새벽에 TV를 보앗따. 그리고 즐거워 미소를 감추기 어려웠다. 보은출신 국회의원! 삼십몇년 만이라고 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개표방송을 밤새워 보았을 사람들은 피곤도 잊고 기뻐했다. 아연 거린엔 생기가 넘쳤다. 이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어쨌든 나 역시 그랬다. 이제부터라도 잘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기뻤다. 남들이 갖지 못한 천혜의 자연, 사람 사는 것같은 넉넉한 인심, 삼십 몇년 숙원이라는 국회의원에 개발 촉진지구… 어디멀리 여행을 떠났다가 '여기는 보은' 이정표가 보이면 가슴이 탁 트이지 않던가!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믿는 순간, 아니 그렇게 말하는 순간 우리에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마치 마술사의 하얀 손수건에 비둘기가 나오듯…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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