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참의미 되새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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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참의미 되새길 때
  • 보은신문
  • 승인 1996.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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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춘(편집국장)
인간의 본능적으로 종교적으로 태어나며 무의식적으로도 종교적 행동을 한다고 한다. 이지구상 어느지역이든 인간이 생활 하고 있는 곳이면 다양한 신앙이 있고 우리가 살고있는 한반도에서도 불교와 유교가 들어 오기전 어떠한 모양의 종교가 있었는지 알아보는 것도 재미 있을성 싶다. 물론 선사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체계적인 종교는 없었다.

구석기인들은 사냥이나 신변보호를 위해서 주술(呪術)의 힘에 의지하는 신앙을 가졌으며, 신석기인들은 우주 만물이 제각기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 그 영혼을 숭배하는 애니미즘(ANIMISM)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자연물과 함께 인간도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그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영혼불멸(靈魂不滅) 사상을 믿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지하에 매장한다거나 그 주위에 돌을 둘러서 보호하고 머리를 해가 떠오르는 동쪽으로 두건, 살았을 때 쓰던 물건들을 함께 묻어 주기도 하였다. 시대가 발달함에 따라 부족또는 씨족과 특정한 자연물이 친근한 관계가 있다고 믿는 토테미즘(TOTEMISM)이 나타났다. 이것은 한 부족 집단이 그들의 조상과 보호신인 토템을 공유한다고 생각하여, 죽이던가 먹는 일을 금지(TABOO)하는 풍속이다.

가령, 혁거세의 박씨족(朴氏族)은 말(馬)을, 알지 및 알영의 김씨족(金氏族)은 닭을 각각 그들의 토템으로 생각한다. 삼국시대 후반 왕실의 위력이 강해지면서 왕족이나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건국과 관련된 왕실의 시조신들을 믿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나라가 집중적으로 공격했던 요동성에 주몽의 사당이 있었다. 계루부가 왕권을 장악한 뒤 계루부 왕실의 조상신을 국가적으로 믿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또 백제 2대왕인 다루왕이 동명와의 묘에 참배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동명왕, 즉 주몽은 고구려의 시조이지만 고구려와 유사한 종족들이 세운 부여국이나 백제국에서도 시조 신으로 숭배 받았기 때문이다. 주술사와 관련된 것으로 샤머니즘을 들수 있다. 샤머니즘은 인간과 신을 연결하여 인간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고국천왕의 왕비 우씨가 고국천왕이 죽은 뒤 동생인 산상왕과 결혼하자, 무당의 입을 빌려 죽은 고국천왕이 화를 내며 비통해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당시의 샤머니즘의 위력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또 다른 신앙으로는 점복(占卜)을 들 수 있다.

부여에서는 전쟁이 있을 때에 제의(祭儀)를 행했는데 소를 죽여 굽(소의 발톱)이 벌어지면 흉(凶)하고 합쳐지면 길(吉)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 밖에 화랑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풍류도(風流道)와 같은 전통 종교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유의 신앙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 (372)불교가 들어옴에 따라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불교의 한 쪽에 면면히 남아, 산신당, 칠성각의 형태로 전해지고 일반민중의 생활속에 깊숙이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한국에도 수천의 종교와 종파가 있다고 하니 아마 부종교인은 없을성 싶다.

요즘 각종 언론에 보면 젊은 영화 감독이 심혈을 기우려 제작한 유리라는 영화가 특정 종교와 관련된 내용으로 범종단 차원에서 개봉 반대 운동을 한다고 한다. 또한 목사들끼리 주먹질을 하여 구속사태까지 발생하였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구도의 모습과 파김치된 세상에 소금의 역할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데스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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