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離郞 송인성 필자, 아리랑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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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離郞 송인성 필자, 아리랑 연구가
  • 보은신문
  • 승인 1990.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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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여인의 정한이 담겨있는 보은아리랑
우리 민족은 유속생활 시대를 지나 농경생활 시대로 정착하기까지 오랜 세월속에 한 고장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살면서 그 지방마다 고유의 특색이 생기고 고유의 전통이 이루어졌으며 고유의 풍속도 자연히 생겨나게 도었다. 서울 깍쟁이, 평안도 박치기, 경상도 문동(文童)이, 충청도 양반이 그렇고 관혼상제나 명절에서도 지방마다 골골마다 가지각색의 고유한 풍속이 전해 내려와 전통이 되었다.

그런데 지방마다 이런 고유의 풍속이나 민속들이 왜정 36년간의 지배하에서 민족혼 말살 정책에 메말라 버려 이제는 찾아 볼 수조차 없이 되어버리거나, 해방과 더불어 6·25를 겪으면서 외래 사조에 휘말려 전통적인 우리의 풍속이 소리 없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리라!

그 중에서도 우리 보은 지방에서 이십 오륙여년전까지도 불리워지던 보은 고유의 보은 아리랑이 자취를 감춰, 보은 아리랑을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것은 더욱 안타까운 노릇이다.

필자가 이 보은 아리랑(我離郞)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것은 아리랑(我離郞)의 뜻을 알기 위하여 나름대로 오랫동안 허송세월(?)을 하였기 때문이다. 늦게서야 알게된 일이지만 간단히 말해서 '나를 떠나 가시는 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한문 아리랑(我離郞)으로 귀착하고 말았으나, 우리 겨레와 이 아리랑(我離郞)은 김치나 된장의 기원과 같이 기나긴 역사속에서 우리겨레의 민족혼이 담겨진 고유의 노래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1988년 12월 <가정과 청소> 잡지에 「아리랑(我離郞)과 우리 겨레의 민족혼(民族魂)」논문 발표)

필자가 우리 보은에서 아리랑 노래를 들은 것은 보은면사무소 재직시(1965년경) 이평과 성주리, 월송리 1, 2구를 담당하여 자전거로 출장을 다닐적에 용천리 숲속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들이 봄 철에 그때는 천렵이라는 놀이터에서 함께 부르는 보은 아리랑(我離郞)노래 소리를 간간이 들었었고, 성재(삼년성) 솔밭속에서도 나이 많은 여자분들의 놀이터에서 들은 기억이 남으며, 회남면서무소 재직 당시에는 지금은 대청댐에 수몰된 풍암 밑 놀이터에서도 보은 아리랑 노래 소리를 들은 것이 어렴풋이 기억된다.

그러나 그 때는 그 아리랑이 그렇게 값진 것 같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보은 지방의 값진 노래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 그 옛날의 기억을 더듬게 되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윤택하지 못한 시절이어서 할머니들이 놀이를 마음놓고 할 수가 없는 때라 쌀이나 보리를 두세되씩 거둬서 일부는 남겨 점심을 마련하고 일부는 팔아 음료수나 막걸리를 사다가 외부인들이 잘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그래도 마음놓고 술도 마셔보고 춤도 추어 보면서 늙음의 한을 푸는 것이 농촌의 봄놀이이고 천렵이었다.

이 놀이터에서 노들강변이나 도라지타령이 나오고 흥겹게 춤을 추며 아리랑도 불렀었는데 그 노래말(가사)에서 보은 지방 여인들의 말할나위 없이 다정다감한 정한을 느낄 수 있었다. 보은 지방 여인들의 숨김 없는, 순진하고도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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