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금회(보덕중학교 교사)
진주에게 설은 잘 지냈는가. 자네에게 얼마만에 글을 써보는지 모르겠네. 지난번 보내준 자네의 연하장은 잘 받아 보았네. 지나간 시간들이 나태함으로 밀어 넣어 답장 쓰는 것도 까맣게 잊고 사네. 자네 가족들 모두 잘 있겠지. 특히 귀염둥이 성수놈의 재롱이 온 가족의 기쁨이 되어 있겠지. 혹독하게 몰아대던 겨울도 봄을 이기지는 못하는가 보네. 아직 볼을 스치는 바람이 차갑기는 하지만 그 겨울의 찬 기운과는 사뭇 다른 듯하네.자네의 봄같이 화사하던 웃음도 생각나네. 여전하겠지. 우린 3월 준비에 바쁘네. 새학기, 새학생, 새책, 새시간표… 3월은 긴장되고 분주한 그런 달이네. 그 중에서도 그 첫째날은 3월의 모든 분위기를 압도하네. 올해는 77주년이라 하지않던가. 사람으로 치면 한 인생을 마무리함직한 큰 세월이지. 3월 정신의 신앙으로 여겨지던 소위 민족대표 33인중 '정춘수'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가. 이 땅의 중심부에 사는 자네에게 지방에서 일어난 그 '사건'을 얼마만큼이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네.
지난 2월8일의 일이네. 그는 민족대표 33인중 충북 출신의 인물로 청주 우암산 3·1공원내에 동상으로 세워져 있었네. 민족대표중 과반수가 3·1운동 후에 그러했지만 정춘수란 인물 역시 친일변절이란 우울한 역사의 오점을 남기고 말았네. 그후 각계 사회 시민단체의 탄원과 싸움 덕에 청주시와 충청북도에서 그 동상에 대한 철거 결정을 내려 놓은 상태가 되었네. 그리곤 미묘한 감정 문제가 걸리면서 철거자체를 서로 회피해 왔던 걸세. 그러던 차에 청주의 시민단체들이 2·8독립선언일을 기념하며 말많던 동상을 끌어내고야 말았지. 그후 문제는 더욱 불거지고 말았네.
충북도, 청주시, 경찰은 사실상 시민단체로 하여금 동상 철거를 하도록 유도 내지는 묵인했음에도 불구하고, 33인 유족회 등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자 해당 시민단체 대표 및 회원을 구속하겠다며 사법처리 방침을 세웠다. 행정기관을 대신하여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한 시민단체를 고발하기에 이른거라네.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없다네.
'역사 바로 세우기'는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의 유행어나 전유물이 아닐세. '5·18사건'을 계기로 왜곡되고 굴절 되어온 우리의 현대사로 바로 잡아보자는 거지. 누가 하면 '역사 바로 세우기'가 되고 누가 하면 구속 처벌이 되는 지배 논리식의 역사정리는 또다른 문제를 잉태시킬 수 밖에 없는 걸세. 누가 보아도 정당성을 가질 수 있어야하는 것 아니겠나. '역사 바로 세우기'는 이제부터 일세. 그 주체는 특정인물이나 특정정당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눈일세.
현란한 세상의 일에 묻혀 짐짓 눈감아 버리는 사이 또 다른 왜곡된 역사가 만들어 진다네. 이젠 빵으로만 살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거네. 따뜻한 3월이 시작되네.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솜털 같이 보드라운 싹을 이 땅 곳곳에 내밀 꽃다지가 보고 싶네. 이만 총총.
<생각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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