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배고파 울 때 제일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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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배고파 울 때 제일안타까워
  • 보은신문
  • 승인 1990.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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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졸업후 품팔이로 동생 돌보기도
“엄마·아빠 없는 서러움보다 동생이 배가 고파 먹는 거에 대해서 치근덕거릴 때 제일 안타까웠어요.” 삼승면 선곡 3구에 사는 김반주(19. 보은상고 3)양은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꺼내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는다. 1980년 10월 19일 모친이 사망하고 부친이 무단 가출 후 일체 소식이 없자 반주의 3남매는 천애의 고아가 되었다. 이때 반주양이 국민학교 5학년, 동생 반하가 국민학교 3년, 남동생인 만조가 국민학교 1학년으로 소녀 가장으로서의 어깨는 자기 한 몸 추스르기에도 벅찬 어린이였다.

국민학교 5학년으로서 두 동생을 돌보아야 했던 반주양은 그전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부산에서 살고 있었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가 무단가출하자 돌봐줄 친철이라곤 큰댁뿐이어서 큰댁 근처인 삼승 선곡마을 김해중(36)씨댁 오막살이 단칸방에 세를 들어 삼남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워낙 큰댁도 7남매의 어려운 살림이었고 전적으로 반주의 삼남매를 돌봐주기에는 힘에 겨웠다.

반주양은 국민학교를 가까스로 마치고 1년간 두동생들을 위해 동네 과수원일과 김매기 등의 품팔이를 해서 동생들 학용품과 생활을 이끌어가다 영세민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되어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 군내 BBS(회장 구연술)회원중 원남에 사는 이규훈(37)씨가 반주 3남매와 84년도에 자매결연을 맺게 되었고 K식당 최원기(42)씨가 고1때부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졸업을 앞두고 농협 연쇄점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나 두 동생과 함께 생활하기에는 여전히 벅차다. 비록 오막살이 단칸방에서도 밝게 웃는 얼굴로 생활하지만 그 가슴에 패인 주름은 언제쯤 밝게 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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