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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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어제와 오늘
  • 보은신문
  • 승인 1990.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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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리의 대추… 통일신라시대 어용물품으로 사용
특산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보은의 특산명물하면 회인의 감과 삼가리의 대추를 꼽을 수 있다. 그 외에 속리산의 도토리묵과 목공예품, 머루주와 민판동의 복조리, 대목리의 토종꿀, 산외면의 담배, 봉황리의 고추가 유명하며, 민속 공예품과 병과류도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다.

△ 회인의 감
회인은 원래 산세가 수려하고 골이 깊어 기후가 온화하고 바람이 약하여 감나무가 자라기엔 안성마춤이라 감의 원산지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회북면과 회남면 등에 넓게 분표한 감은 옛날보다는 숫자가 많이 줄었으나 아직도 가을이면 관내 어디를 가나 노란 점들로 뿌려진 장관을 볼 수가 있다. 1988년 현재 1백78㏊에서 1천1백21㎏의 감이 생산되고 있다.

△ 삼가리의 대추
배·밤과 함께 제상에서 빼놓을 수 없으며, 약용으로도 쓰이는 대추 주산지는 역사적으로 내속리면 삼가리 일대이다. 이곳 대추는 품질이 좋아 통일신라시대 조세의 일종인 조의 큰 몫을 담당하였으며 어용물품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한때 대추나무 대싸리병으로 인하여 삼가리 대추가 전멸할 위기에 놓이기도 하였으나 보은농고 지술지도교사 최상훈선생이 대싸리병 방제법을 성공시킴으로써 대추 주산지의 면모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속리축전때 선발하는 대추아가씨는 보은의 대표적 명물이 대추임을 대변해 주고 있다.

△ 삼승면의 사과
사과하면 대구능금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1970년대에 들어 영농기술에 눈을 뜨고 야산지대로 과수원 개발에 좋고 토질이 점토질로 사과재배에 적합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재배면적이 늘어나 80년대 초에 1백9㏊, 87년 1백54㏊이던 것이 1988년 현재 1백81㏊로 늘었고 연간 1천6백90M/T가 생산되고 있다.

△ 속리산의 머루주·도토리묵
초가을에 속리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많이 채취되는 머루로 만든 머루주를 먹어보지 못하면 속리산에 다녀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속리산의 머루주는 맛이 일품이며 특히 속리산의 또하나 별미인 도토리묵과 어울리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맛의 조화를 이룬다. 도토리묵은 등산객의 간식은 물론 수화촉진제로 특효하며 늙는 것을 방지하고 피부에 윤기를 전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수요에 공급이 따르지 못하고 있다.

△ 목공예품과 민속공예품
속리산에는 나무자원이 풍부하고 찾는 관광객이 많아 목공예가 발달하였다. 그 가짓수는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으나 크게 노인들이 찾는 지팡이류, 여자들이 찾는 인형류, 학생들의 학용품류와 불그림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밖에 멍석과 매판, 돗자리와 싸리제품으로 바수거리, 싸리비, 다래끼, 종두래미 등이 많이 생산되었으나 요즘은 프라스틱 제품이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어 찾아보기가 어렵다.

△ 산외의 담배
산외면 일원에서 재배되는 담배는 1957년을 시작으로 확대되었는데 대부분이 확색종이다. 1988년 현재 산외에서만 4만7가구에서 56만4천5백33㎏을 생산하고 있으며 보은군 전체에서는 1천5백20가구에서 1백94만5천3백39㎏을 생산하고 있다.

유적 및 유물
국보
·명칭 : 법주사 쌍사자석등 ·지정홋수 : 5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법주사 팔상전 ·지정홋수 : 55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법주사 석련지 ·지정홋수 : 64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보물
·명칭 : 법주사 사천왕석등 ·지정홋수 : 15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법주사 사천왕 ·지정홋수 : 16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법주사 자애여래기상 ·지정홋수 : 216호 ·소재지 : 내속 사내

사적
·명칭 : 속리선 법주사 ·지정홋수 : 4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삼년산성 ·지정홋수 : 235호 ·소재지 : 보은 어암

지방유형문화재
·명칭 : 법주사 원통보전 ·지정홋수 : 1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순조대왕 태실 ·지정홋수 : 11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복천암 수암화상탑 ·지정홋수 : 12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복천암 학조등곡화상탑 ·지정홋수 : 13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법주사 세존사리탑 ·지정홋수 : 16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법주사 희견보살상 ·지정홋수 : 38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법주사 사천왕문 ·지정홋수 : 46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상현서원 ·지정홋수 : 48호 ·소재지 : 외속 서원
·명칭 : 김수온 부조묘 ·지정홋수 : 60호 ·소재지 : 보은 지산
·명칭 : 법주사 석조 ·지정홋수 : 70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익재 영정 ·지정홋수 : 72호 ·소재지 : 탄부 하장
·명칭 : 고봉정사 ·지정홋수 : 92호 ·소재지 : 마로 관기
·명칭 : 보은 향교 ·지정홋수 : 95호 ·소재지 : 보은 교사
·명칭 : 회인 향교 ·지정홋수 : 96호 ·소재지 : 회북 부수

지방문화재
·명칭 : 법주사 벽암대사비 ·지정홋수 : 71호 ·소재지 : 내속 사내
·명칭 : 법주사 자정국존비 ·지정홋수 : 79호 ·소재지 : 내속 사내

지방기념물
·명칭 : 조주봉 후율사 ·지정홋수 : 15호 ·소재지 : 수한 차정
·명칭 : 풍림정사 ·지정홋수 : 28호 ·소재지 : 회북 눌곡

희귀종과 유서깊은 나무
△ 속리산의 상징 정이품송
내속리면 상판리 17의 3번지에서 있는 수령 6백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소나무이다.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103호로 지정되었으며 높이 15m, 가슴높이의 둘레 4.5m, 가지의 길이는 동쪽 10.3m, 서쪽 9.6m, 남쪽 9.1m, 북쪽 10m의 노거수이다. 이 나무에 정이품이라는 벼슬품계가 내린 것은 신병으로 고통받던 세조가 왕위에 오른지 10년 되던 해에 속리산을 찾아 치료할 때 나무 아래로 지나던 가마가 나뭇가지에 걸릴 것을 염려하여 “연 걸린다”고 하자 나뭇가지가 저절로 들려져 가마가 무사히 통과하게 되어 이를 기특히 여긴 세조가 벼슬을 내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망개나무
내속리면 사내리 산 1의 1번지에 있는 이 나무는 그 수가 많지 않아 1968년 6월 21일에 천연기념물 제207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그 크기는 약 12m, 가슴높이의 둘레 78㎝, 가지의 길이는 남쪽이 7m로 가장 길다.

△ 백송
보은읍 어암리, 속칭 ‘탑골’부락 뒤에 있는 이 나무는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 104호로 지정되었으며, 높이가 11m, 가슴높이의 둘레 1.8m이다. 이 나무는 정조때 사람인 탁계 김상진선생이 정조 16년(1792년)에 중국에 다녀올 때 종자를 가져다 심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속리산의 특산식물로 송이버섯, 기린초, 싸리 등이 있고 주요 광물로는 회북의 천연스레트와 소여리의 무연탄, 원정리의 흑연이 있다. 유서깊은 나무에는 정이품송과 내외지간으로 전해져 충청북도 보호수로 지정된 외속리면 서원리의 암소나무가 있고, 보은군 나무로 지정된 내속리면 상판리 법주국민학교내의 소나무가 있다. 이밖에도 마전사와 사괴정의 은행나무와 마로 송현리의 느티나무, 마로 원정리의 느티나무와 보은군 지정나무인 지산리의 물푸리나무, 성지리의 엄나무 등이 전설과 함께 내려오고 있다.

고장을 빛낸 인물
보은은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산간 내륙지역에 위치하여 큰 산맥의 줄기만큼 대세의 흐름에 민족적 정기와 전통적 얼을 면면히 이어왔다. 일제시대 각 지역의 역사적 흐름과 민심의 동향을 조사하여 무단정치를 시행하였는데 특히 보은 지역이 심했다. 일찍이 성대곡의 학문을 전승받은 선비들이 의로운데 치중하여 벼슬길에 나서는 것을 꺼렸을 뿐만 아니라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강한 의협심을 길러온 지역으로 임진왜란 때는 중봉 조헌선생을 따라 의병으로 지원하여 국난을 극복하는데 선봉이 되었고 병자호란 때 역시 보은에서 태어난 벽암각성이 승병으로 나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와같은 역사적 흐름과 군민들의 성향을 정확히 통찰한 동학 제2대 교주 최시형은 “사람은 곧 하늘이다”는 인내천의 사상적 기치를 드높이고 외세의 배격과 관가의 탐관오리들을 숙청하라는 구호아래 시위장소를 보은으로 정하여 2만의 동학도들이 보은군민의 은밀한 협조아래 성공적으로 시위를 전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자주정신과 의협심이 강한 고장임을 알고 보은에 파견된 일제 관헌들은 모든 범죄를 정치성과 연관시켜 다루게 되니 하찮은 폭력이나 절도행위에 이르기까지 외세 배격을 위한 절도 행각으로 취급하여 가혹한 처벌을 당하게 되었다.

“보은 사람 아니면 청주 감옥이 빈다”는 항간의 말도 이때부터 생긴 말이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합병한 후 보은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투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니 일본 침략자들이 보은 사람을 두려워하며 혹독한 탄압을 가하게 된 이유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은의 의로운 기개는 꺽이지 않고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그 맥을 대략 더듬어 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초의 대상 공직장군, 명평양감사 구봉서선생, 병암에서 산 학자 구수복선생, 금오대종사, 우국선비 권양하선생, 일구당 김가기선생, 지략가 김경장군, 김경세선생, 빈천이 부귀보다 좋다던 김광, 외교에 능했던 김덕민선생, 의관만 묻어야 했던 의사 김성원, 사화에 진 충암, 인조반정 공신 곰원량선생, 명판관 김옥선생, 의병장 노병대선생, 조선말기의 마지막 성리학자 박문호선생, 기로개 박삼길선생, 병자호란과 벽암 각성대사, 석성국 의사, 모현암에 묻힌 대곡, 작은 우암 송시도선생, 개화에 참여했던 어윤중선생, 통일신라를 발전시킨 영심대덕, 우국지사 유신영선생, 윤여익의사, 항일운동에 앞장선 윤정훈의사, 이국선의사, 시명을 날린 이명홍선생, 탄부 하장리의 이사균선생, 성리학자 이상수선생, 기대에서 산 문신 이세정선생, 일제에 대결 타 자살한 이승칠선생, 우국지사 이일선선생, 독립만세를 주도한 이준영선생, 평생 왜인을 미워한 이창선의사, 과학기구와 금속활자를 창제한 이천선생, 을사사화의 원흉을 탄핵한 이천계선생, 우국지사 이홍렬선생, 북벌을 공모한 임의백선생, 진표율사, 풍속을 교화시킨 최동제 선생, 원정의 명인 최수성선생, 고려의 명장 최영장군, 선곡에 은거한 계당 최홍림선생, 세조를 도운 홍윤성선생 등 각 시대의 흐름속에서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우리 고장의 빛이 되어 우리의 앞날에 스승으로 우리 후손들이 따르고 존경하며 그분들의 업적을 기리고 우리의 굳센 의지와 창의력도 길러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과거를 통한 오늘의 접맥은 미래를 향한 보은의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며 우리 고장에 대한 관심과 긍지가 꽃 피우는 가운데서 우리 고장은 더욱 성숙된 미래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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