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설렘을 안고 생동하던 3월이 그저께 같은데. 오늘은 유성 국화축제를 다녀왔다. 움 틔우느라 애쓰던 활엽수들은 어느새 단풍놀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들뜬 기분으로 마트에 들렸다가 지난해 한참동안 넋두리를 들어줘야했던 지인을 만났다. 또 지난해처럼 받아 줘야 될까 조금은 불편하지만 딸의 안부를 물었더니 고개를 저어며 고맙다고 한다. 내가 오지랖 넓은 짓을 했는데 고맙다고? 당황했다.
평소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도 몰랐는데 성당에도 안갈 거라며 천주님을 원망하던 여인이다. “천주교 신자였어?”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기네 부부는 바빠서 성당에 자주 못가고 부모님께서 저희들 기도까지 다 해주신 거란다. 자식들 기도는 정성이 더 담기는 어머니들의 대리 기도다. 딸이 위급한 상황이라서 내가 직접 눈물로 기도했지만 발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천주님을 원망하는 모양새가 참 모순으로 보였었다.
어느 금융사기 사건에 휘말려 딸이 수갑을 차게 되자 성당에도 직접 가서 뜨겁게 눈물로 진심을 다해 기도 했단다. “진짜 간절하게 기도 했는데 재판에서 졌잖아.” 울면서 기도 했는데 결국 외면당했다는 것이다. 황당하고 듣기 민망해서 오지랖 넓게도 내가 한참 동안 열변했던 기억이다.
“설마 소설 서유기처럼 사람을 원숭이로 둔갑시킨다거나 원숭이를 사람으로 둔갑시키는 기적을 바라는 기도는 아니지? 딸이 범법을 하지 않았는데 누명을 쓴 것이라면 지극정성 기도로 분명히 벗어날 거야, 하지만 범법행위를 해놓고 딸을 풀어달라는 기도는 하면 안 되잖아. 딸 수갑 풀어 주려고 천주님께서 범법하시라는 거잖아.” 지인은 말을 잃고 눈동자는 허공을 향했다. 떨떠름한 표정이지만 진실을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달착지근한 말로 덮을 줄 안다. 하지만 그런 짓은 지인을 더 나락으로 밀어붙이는 행위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진실 된 기도는 절대 외면당하지 않아. 평소 꾸준히 자식위해 기도 했다면 딸이 그런 범법을 저지르지 않았을 거야. 콩 심은데 콩 나듯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심으면 필요할 때 저절로 움이 트고 싹이 돋는 거야. 쉽게 말해서 기도를 저축하는 거지, 저축 된 기도는 필요할 때 급하게 찾으려고 성당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자동 인출 되는 거야.” 그는 내 말의 뜻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로해주기 바라는 마음일 것이지만, 나는 알면서 주책이었고, 뒤늦게 그의 손을 잡았다.
“나도 열 받아서 그만 푼수 없이 떠들었구나, 딸 건강은 괜찮아? 남편과 손녀들은? 원래 당하는 본인보다 지켜보는 엄마가 더 가슴 찢어지는 겨,” 그의 볼을 타고 두 줄기가 주르르 흐른다. 손수건을 꺼내주며 나도 말을 잃었다. 모성애는 강하니까 준이 엄마는 주저앉지 않고, 맥 놓지 않고, 정신 차려서 딸 뒷바라지 잘 하리라 믿는다고 말해줬다.
지금 당장 어떤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요 이기심이다. 평소 정성을 다하는 기도는 저축되었다가 어려울 때, 힘든 고비가 올 때, 은혜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은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는 절대적으로 못한다. 지은 죄를 없애 달라는 그 마음부터 죄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지은 죄의 대가는 꼭 치러야 된다는 마음으로 산다면 범죄도 줄어들 것 같다.
인도인의 카스트제도 개념은 자신이 천민으로 태어난 것이 그 누구의 탓도 아니요, 전 생에 자신이 지은 죄의 대가라고 생각하니까, 비관과 원망보다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지인도 생각을 바꾸니 지난해와 다른 사람 같다.
정식 판결을 받고 나니까 오히려 안정이 된다며 이제는 딸에게 힘든 고비 잘 견딜 수 있도록 영혼의 위안을 주소서, 건강을 주소서 천주님께 기도한단다. 지금은 매주 미사예배 꾸준히 다닌단다. “딸도 주일미사 꼭 지키라고 혀.” 알아서 할 텐데 또 오지랖.
“오선샘 덕분에 기도의 진실을 알게 됐어. 고마워.” 그의 눈찌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재작년 입춘 날, 현진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평범한 것 같지만 아주 깊고 큰 의미가 담겨서 나는 가슴에 새기고 늘 되뇐다. 우리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듯 복을 심어야 복을 거두고 죄를 심으면 죄 값을 거둔다는 말씀이다. 지인에게 심는 대로 거둔다는 스님의 말씀도 전했다. 나는 믿는다. 평소 꾸준한 기도는 절대 헛되지 않고 저축이 되어서 필요할 때 은혜를 입는다는 것을. 그래서 아침마다 기도 저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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