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행복한 시간의 뒤안길에 밀려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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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행복한 시간의 뒤안길에 밀려난 것들
  • 보은신문
  • 승인 1991.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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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옥(주부, 외속리면 서원리)
문득 지난 여름날의 느낌이 새삼스레 생각난다. 찌는 듯한 날씨에 따가운 햇살이 화살촉 같이 지상을 향해 내리쏘고, 어디선가 메아리 처럼 울려퍼지는 말매미의 긴 - 울음이 더위를 한층 느끼게 하는 지난 팔월의 어느날 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피서인파의 자동차 행렬이 줄지어 내달리고 있었다. 도심에서 찌든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심산유곡을 찾아 몰려든 원색의 물결이 계곡을 가득히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도로변에 줄지어 서 있는 자가용들, 울긋불긋 텐트의 움집속에 떠돌이 짚시의 행락객들. 수영복 차림으로 갖가지 물놀이 기구들에 몸을 싣고 물장구 치는 개구쟁이들을 보면서, 우리네 유년시절에 집으로 돌아오는 학교길에서 벌거숭이 알몸으로 더위를 식히기 위해 개울물에서 멱을 감았던 일을 떠올렸었다. 하루세끼 밥먹고 살기가 바쁘던 시절이었다. 학용품도 귀하여 어렵게 공부를 하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깊은 계곡에 발디딜 틈도 없이 모여든 인파와 텐트들……어느 곳에든 자유롭게 즐기는 그 모습에서 우리나라도 많은 성장을 하였구나 싶었다.

옛날 보리고개에 씨라기 죽으로 끼니를 때우던 그시대 그 사람들이 저렇게 여유로운 시간에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분명 선진국이 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우리의 부모, 형제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지구끝 어느 모퉁이에서인가 고통과 절망의 늪속에서 바람부는 창가에 켜진 촛불같이 가느다란 생명줄을 부여잡고 간절한 기도속에서 생을 이어 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한다. 그 사람들도 분명히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부처님 앞에, 또는 하나님 앞에 올리는 기도는 어떻나 것인가

모두가 개인의 행복과 영화를 비는 기도가 아닐까……하지만 바람부는 창문앞에 놓인 생명의 간절한 기도가 과연 어떠한 것인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있는가. 푸른 하늘의 공간과 넓게 뻗어 있는 탄탄대로, 이 두 평행선 위를 수직으로 걷는 우리는 이렇게 반 비례적인 현실앞에 서있다. 뒤돌아서면 고통의 신음소리와 거리의 골목에서 돌베게를 베고 누운 무숙자의 모습과, 서산으로 기우는 석양이 노을빛 아래 두고온 자식을 그리면서 아득한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빛바랜 머리엔 연륜의 척도가 깊어진 얼굴로 한줄기 흐리는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여름의 인파가 떠나고난 빈자리에는 나부끼는 휴지조각과 오늘도 유유히 흐르는 개울물만이 남아있다. 산준령 밑에 그 누가 켜놓은 촛불인가가 바람에 깜박거리며, 까만 비로오드천의 막이 내려진 어둠속에 징소리와 경읽는 기도 소리만이 어둠속으로 묻혀가고 있다.


(생각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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