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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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발
  • 오계자(보은예총 회장)
  • 승인 2024.02.2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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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발: 짐승이 잠잘 곳이나 숨을 곳을 찾을 때 그곳을 다른 짐승이나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빙빙 돌아가는 일
내가 지금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문득 꽃발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가끔 한밤에 풀숲에서 들려오는 벌레 소리에 크게 놀라는 적이 있습니다. 만상이 고요한 밤에 그 작은 미물이 자기의 거짓 없는 소리를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 때 평상시의 생활을 즉각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부끄럽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그분도 벌레 소리를 거짓 없는 소리라고 하셨다. 그래서 삶이 허영임을 깨달으셨고 참 생명을 지닌 자의 모습은 저래야 된다고 뉘우치면서 미물인 벌레가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은 생활이라 기 보다 경쟁과 투쟁을 도구로 하는 허영이었다고 하셨다. 
이글을 읽으면서 꽃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내 못돼먹은 영혼이 티를 내는 게다. 내가 평소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에게 늘 이렇게 말해왔다. 
“내 영혼은 참 못됐어, 교회에 가면 창세기 1장 1절이 믿어지질 않고 절에 가면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읊었다는 말도 믿어지지 않거든”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오늘처럼 무위당 선생님께서 삶의 도량에 깊숙이 들어가셔서 하신 말씀에 함께 빠져들어 공감을 하며 감동을 하는 것이 보통 문인들의 정서이다. 그렇게 서정적이지 못한 내 영혼이 싫어서 가끔은 혼자 훌쩍 떠나 숲속을 거닐기도 하고 호수를 찾기도 하며 바닷가에서 내 속을 풀어헤쳐 보기도 한다. 
노트북 자판기를 쓰다듬고 있는 지금 열려있는 창의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참새들이 제법 들뜬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른다. 저 목소리를 어찌 가식이 섞인 소리라고 하랴. 아마 좀 전에 뿌려준 음식물을 발견하고 신호를 보내는 모양이다. 삽시간에 온 가족이 다 모여 뒤 곁 텃밭을 청소해 준다. 참새의 신호에 산비둘기며 낯설지 않지만 이름을 모르는 새들과 까치도 순식간에 모여든다. 가끔 아주 가끔은 침대에 눈운 채 창문을 열어서 한 결 같이 팔팔하고 들뜬 목소리를 내는 참새를 넋 나간 사람처럼 바라본다. 저리도 바쁠까, 그 자그마한 눈동자가 찰나도 쉼 없이 움직인다. 바라보는 나까지 생기가 돈다. 너희들도 먹는 것 자는 것 때문에 번뇌가 있느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당연히 낳은 알과 갓 알에서 나온 아가들 보호를 위해 걱정하고 애쓰는 모성애는 있을 테지 싶어서 혼자 자문자답을 한다. 
내 영혼을 숨기고 싶은 시간과 공간에 내가 갇히고 말았다. 
내가 미물이나 새들의 소리에 거짓이 없다는 표현에 반론을 펴는 소피스트로 오해를 받을까 염려되어 그동안 입을 닫았다. 지금 솔직하게 툭 터놓는다면 짐승들이 인간을 속이기 위해 하는 행위 꽃발도 속임수다. 인간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은 거짓이며 속된 행위로 보면서 짐승들의 속임수는 어찌 참된 행위라고 보느냐다. 그렇다면 우리도 내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거짓을 해도 된다는 말이냐고 반문한다면 그런 뜻은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 칠 것이다. 허나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말문이 막힌다. 
아무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꽃발인 듯싶다. 윤리 도덕을 벗어나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길, 꽃발과 같은 범위 내에서 우리 인간도 속임수를 행하자는 말이다. 말하자면 꽃발과 같은 속임수는 본받을 만하며 재미있는 수가 아닌가 라고 강조 하고 싶었을 뿐이다.  
요즘 신문을 들면 1면 2면 다 눈길을 돌리고 오피니언 쪽만 본다. 아무리 원래 정치판이라는 곳이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해도해도 너무하니까 짜증이 화로 변하고 화나는 상태에서 아예 돌아서게 만든다. 속임수의 차원이 저질이니까 꼼수라 하고 꼼수도 지나치니까 무시당하는 국민의 입에서 양아치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이러다가 여의도를 표식동물원이라 칭하게 될까 저어기 염려된다. 제발 꽃발 정도만 행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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