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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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어디로 갔나?
  • 이장열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진흥원장)
  • 승인 2023.12.28 0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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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이틀 밤낮으로 쉬지 않고 쏟아지던 겨울폭우가 그치자 바로 엄청난 강추위가 몰아닥쳤다. 이곳 산골도 영하16도로 금년 들어서 최저기온이란다. 색바랜 서리 빛 하늘아래서 얇은 비니루 막을 치고 오가는 사람들을 응시하는 난전 할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이제 며칠 지나면 금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지난 수많은 기억 속에서 그리운 모습들이 떠오른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븟날”이라니 내일은 크리스마스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추운 날에 태어나셨을까? 하하하.
젊은 시절에는 연말로 이어지는 세모에 밤새 거리를 배회하며 법석들 떨었지. 그런 부류에서 빠지면 바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믿지도 않으면서... ” 그저 연휴라서 노는 것이 즐거워서 추운 줄도 모르고 가까운 벗들과 술을 마시며 밤을 새웠었지. 이건 미친 짓이야! 하면서도 다음해에 또 그 짓을 했었지. 그런 친구들 지금은 어느 하늘 밑에서 살고 있는지? 들리는 소식으로 누구는 크게 성공해서 어디에서 잘 살고 있고 누구는 사업실패로 자살을 했고, 또 누구는 퇴직 일시금 전액을 아들 사업자금으로 대주었다가 아들과 함께 망해서 소식을 끊었다고 한다. 또 유명화가인 친구는 간암으로 투병하다가 작년에 타계했다고 했다. 그 이외에는 소식이 모두 끊어졌다.
또 내 어린 시절에는 온 동네에 어른들 밖에 안보였다. 설날에는 새옷 입고 안동네 친척 어른의 집을 찾아가서 우선 방문을 열어놓고 물러서서 대청마루에서 큰절을 하면 쌀어리, 콩어리, 깨어리, 감 등을 내놓으시면서 먹으라고 했다.
그 많던 어른들이 다 가고 지금은 동네에 어른이 없다. 고사리손에 쥐어진 먹을 것 말고는 욕심 근심 없던 그 어린 시절이 그립다. 어른에게 칭찬을 받으면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던 그 시절, 큰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울 때 큰아버지가 달(月)을 두고 시를 지으라고 해서 동무들과 같이 지어 올렸는데 “큰아버지가 깜짝 놀라시면서” 크게 칭찬해주신 일이 평생 안 잊힌다고 회고하시던 아버지가 가신지도 이미 오래이고, 아버지 산소 앞에서 노을진 서산을 바라보며 “나 죽거든 여기에 묻어달라”고 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그립다. 그 소원마저 들어드리지 못하고 타향땅에서 생각이 다른 영혼들 속에서 나를 바라보시는 어머님 생각에 가슴 아프다. 어느날 내가 미친개에게 화를 당한 것을 보고 지개작대기를 들고 단신으로 뛰어 나가서 그놈을 때려잡아 복수를 해주었던 형이 그립다. 이렇게 내 주위에는 고마운 형제자매와 부모님, 친척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내 기쁨을 공유하고 성공을 기뻐해줄 부모형제들이 없는 지금은 외롭기만 하다. 꽃도 벌나비 때문에 피고 서로 희롱하며 사는데 반겨줄 벌나비가 없는데 꽃은 피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산 사람은 분명히 죽는다. 그래서 인생에서 영별이 가장 슬픈 것이다.
생각해보면 현대는 그리움을 상실한 시대다. 현재 이외의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다. 오직 그리움만 잔뜩 짊어진 나의 세대가 가고 나면 이제 더 이상 그리워해줄 사람도 없는 그분들은 영원히 기억의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 것.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가 되고 만다. 2023년도 마지막 촛불이 깜박이다가 한번 큰 숨을 내뱉고 훅 꺼져 버릴 것이다. 그리고는 공기도 소리도 없는 텅빈 달나라같은 공간이 되고 말 것이다. 이후 새로운 해가 떠오른들 이미 간 과거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달 잡으러 해가 서산 깊이 숨어가니 달은 이미 동쪽 노송 뒤로 달아나고 수리부엉이가 날개로 달을 숨겨준다. 내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숨 쉬던 그 세상, 어머님과 함께한 그날의 노을이 서럽도록 그립다. 꽃도 벌 나비 때문에 피어나서 사는데... 벌, 나비도 오지 않는 꽃이 핀들 무엇하리요. 그리운 임들아, 모두들 어디로 사라졌나? 나는 어이 살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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