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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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단상
  • 김종례(문학인)
  • 승인 2023.08.1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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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오물을 다 떠내려 보낼 것처럼 연일 퍼붓던 소나기와 우레 소리가 시원했던 순간도 잠깐, 사막을 걸어가다 오아시스를 만난 듯이 생기가 돌았던 것도 잠깐,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가져온 홍수피해의 망막함 속에서 8월이 왔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폭염과 국토수직관통 태풍이 교차하면서, 어느덧 입추와 말복까지 훌쩍 보내고 처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잡초를 뽑던 손길을 멈추고 어디선가 자지러지는 매미 일성에 넋을 놓고 앉으니, 어릴 적 여름방학의 기억들이 가물거리며 생각을 이끈다. 학생인권조례의 부작용과 무너지는 교권침해 여파로 혼란스러웠던 교육현장 이었지만, 아이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휴식기인 여름방학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새삼 개학을 앞두고 밀린 숙제에 전전긍긍할 아이들의 여름이 참 궁금해진다.  
  나도 달력에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치면서 소중히 보냈던 여름방학이 영원한 보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말고 축제처럼 살라고들 말하지만 ~ 이색적인 여름방학 숙제의 체험은 이 나이에도 즐겁기만 하다. 식물채집,곤충채집,우표수집,상표수집,옷감모으기,여름풍경화,나의집만들기,일기쓰기,나팔꽃아침인사,봉선화물들이기,친척집방문,원두막낭만놀이,빈집귀신놀이 등. 모두가 미래의 인성을 염두에 둔 자연적 발상 체험학습이라서, 요즘 아이들에겐 꽤나 경이롭고 신기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어머니 젖무덤 같은 언덕길에서 함께 뛰어놀던 동무들은 정처없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쏜살같이 지나간 유성처럼 어디론가 떠나갔지만, 꿈의 나래를 활짝 펼쳤던 여름방학의 낭만은 누구에게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리라. 
  오늘은 오래된 멍석 대신에 나무평상에 누워서 밤하늘도 올려다보기로 하였다. 땅거미가 진지도 한참인데 별 하나가 없는 밤하늘은 적요하기 그지없다. 그 수많은 기억 중에도 유난히 내 가슴에 초롱대는 건 고향집 밤하늘의 정서이다. 온 가족이 멍석에 누워 바라보던 꿈처럼 행복했던 별들과 은하수, 그리고 황홀한 은분달빛을 다시 만나고나 싶어진다. 태양이 하늘의 심장이고 구름이 하늘의 장미라면, 별빛은 바라보는 이들의 꿈이요 낭만이며 행복일 것이다. 신비로운 밤하늘을 탐색하다가 잠에 빠져버리던 여름밤의 애절한 감성이 그리워진다. 마당 가득 펼쳤던 딱딱한 멍석에서의 어머니 팔베개가 그리워 끝내 눈물이 난다. 밤을 지새워도 다하지 못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눈물나게 하나보다.‘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은하수가 와르르 쏟아져서 내 영혼을 덮어버릴 것 같은 환상은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달리곤 하였었지 ~’어디선가 포로롱 날아와 별빛 비치는 숲속의 호수가로 데려다 줄 반딧불 하나 만나고 싶은 밤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아쉬운 흑백필름이 생의 은하수들을 더욱 찬란하게 재생시켜 주는 여름밤이다.  
  너도나도 세상의 스타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이 시대이지만, 진정 마음의 별 하나 가슴에 달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는 노릇이다. 나도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향하는  마음의 멍석을 펼치고 그리움의 등불을 켜보는 밤이다. 평생을 살면서 롤 모델이나 마음의 별을 몇 번인가 바꾸며 살아오긴 하였지만, 영원히 가슴에 환하게 걸어두고 싶은 유일무이한 영혼의 별은 어머니가 아니신가 싶다.   
  난 이렇게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순조롭게 초등과정을 마쳤지만, 10여년의 학창시절은 도시에서 살벌하게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42년의 교직현장에서 밤하늘의 별빛을 희미하게 잊어가면서, 마음의 별 하나 제대로 걸어두지 못한 채 어영부영 예까지 왔나 보다. 언제부터인지 하늘 가득 초롱거리던 별빛도 온데간데없이 점진적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가려져서 보이지 않음이 분명하다. 환경의 위기가 가져온 시대적 비극이며 지구의 위기가 다가온다는 경고음일 것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초한 자연훼손의 결말이기에, 몸살을 앓으며 신음하는 지구를 후세에 물려줄 숙제가 남아있다. 그중에 한 별인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우주의 빛이 사라짐에 대하여 정녕 슬퍼할 일이며 분노할 때이리라. 
  고요로운 한여름 밤에 초롱초롱한 별빛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호젓이 놀아줄 반딧불은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린 영혼들을 살찌우는 체험학습의 강물이 싱싱하게 넘쳐나길 소망해본다. 우주를 나를 만큼의 상상의 날개 짓으로 감성의 강물에 자유롭게 잠수하기를 기대해본다. 다중적인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넘쳐나는 정보화가 무거울 아이들에게, 꺼지지 않는 영혼의 별 하나 반짝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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