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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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사내
  • 수필가 석보 김태혁
  • 승인 2023.07.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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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어머니의 친정, 경북 예천 소중한면 사랑리 동쪽 마을에 논 한 마지기 없고 남의 땅을 소작해 8남매가 먹고 사는 가난하지만 다복한 농부의 가정이 있었다.
 비록 가난에 쪼들려 10식구 가장 노릇에 항상 선도지로 식량을 꿔다 먹으면서도 예천의 양반 가문이라고 나쁜 짓이나 얻어먹는 노릇은 죽어도 하지 않고 살아온 집이라고 했다.
어린 자식들도 배고품을 참을 줄 알고 나무도 하고 남의 집 반 머슴살이도 말없이 하며 한푼 이라도 벌고자 하는 열 식구들의 꿈은 “우리도 남들처럼 우리 땅 한 평이라도 사자”는 큰 포부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집이라 주변에서는 측은해하면서도 행복한 집이라고 부러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부부의 정 너무 유별나하루종일 들이면 들, 밭이면 밭, 장이면 장을 꼭 붙어 다니는 잉꼬부부로 주변은 물론 이웃 마을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임신을 할 때면 신랑이 항상 먼저 헛구역질로 입 덫을 했다.
남편은 아침 된장국이나, 신 김치 냄새만 나면 “으~윽”하고 친구들과 술집이나 식당 가서 음식만 보면 헛구역질을해 친구들은 금세 알아채고 “자네 마누라 또 임신했구먼?”하며 모두가 파안대소하며 한바탕 떠들썩하면 마누라 임신했다는 소문이 동네방네 떠돌며 “별나고 싱거운 암 사내, 그 사람 참 망측하다”며 눈총을 받고 살았다.
세상에 그럴 수도 있냐며 반신반의, 소문은 아들, 손자, 강 건너 사돈 마을을 넘어 대구, 부산은 물론 서울에 사는 우리 귀에까지 들려오며 발 없는 소문은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이런 사람은 내가 장가갈 때까지 내 입에 서도 다른 사람에게서도 웃음거리 소문의 주인공을 그 때는 속칭 암 사내라는 말로 사람들의 귀와 입에 오르내렸다.
그런데, 남의 말 하지 말라고 했던 옛말이 진실될 줄 누가 알았나? 내 나이 27살 때 두 살 연하의 어여쁘고 순진한 시골 댕기머리 치렁치렁 길게 땋은 산골 색시에게 장가가서 백마탄 왕자 공주 황금 무지개를 타고 달 따 주고 별 따준다며 장청쓰고 청운의 꿈을 않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처갓집으로 인사를 갔다.
처갓집에서 이틀을 묵은 뒤 서울 직장 출근 때문에 색시는 친정에 두고 나만 서울로 상경해 매일 새색시를 그리워하며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갑자기 헛구역질이 났다.
울 어머니는 “왜? 또 무얼 먹고 체했냐?”시며 바늘로 엄지손가락을 따 주시며 등을 두드려 주시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없이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밥상머리에만 앉으면 헛구역질은 여전히 이어져 주변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지가 날아왔다. 70년대 초에는 삐삐나 핸드폰 없었고 전화는 부잣집에서나 있을 때라 편지로 문안과 안부를 전했었다. 반가움이 묻어있는 편지를 개봉하니 아내가 며칠 전부터 몸이 이상한만큼 당신이 서울로 와야겠다고 했다.
 걱정 반 기쁨 반 사흘을 기다려 산부인과 진찰을 하니 허니문 베이비 두 달 째란다.
그런데 우리 집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아 몰랐다고 하니 남의 일이라고 웃고 떠들던 내가 암사내였단 말인가? 
 그 뒤로 삼 남매를 키워 살아왔지만, 아내가 임신할 때마다 나는 빠짐없이 헛구역질하고 살았으며 남들이 느껴 보지 못한 상상할 수 없는 기막히고 창피해 집안 식구들 외에는 숨기며 살아왔지만 아마도 내 소문도 발 없이 전국을 돌았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리.
젊을 때 누님들이 나를 보고 “별일이다, 거짓말이다, 쑈 한다”며 웃음바다의 주인공이 내가 되기도 했었다. 오죽하면 장모님께서 아내가 임신하면 “자네가 먼저 미역국 먹게, 입덧하느라 힘들었으니...”라고 농담을 하시기도 했었다.
 요즘 들어 뉴스나 연속극에서 나의 창피한 누명을 벗겨주는 드라마가 자주 나오고 만인이 인정하는 용어 공감임신(쿠바드) 등이 자주 등장해 웃지 못할 지난날 나의 추억을 떳떳하게 되살려 준다.
 속칭 너무 사랑하면 또는 부부 정이 넘치면, 등등 그렇다고 상상임신 쿠바드(공감 임신) 안 한다고 부부 정이 없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너무나 예민한 사람들에게 오는 암 사내 공감임신(쿠바드)이 있다는 것을 탈랜트 정형돈씨도 TV에서 증명했고 드라마에도 나온다. 
 50여년이 지나도록 웃지도 예기치도 못하던 과거 나의 고백을 늘어 놓는 다는 것은 이제 나의 인생 팔순을 지척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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