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신미년(辛未年), 양(羊)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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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신미년(辛未年), 양(羊)의 해
  • 보은신문
  • 승인 1991.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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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처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하여 노력, 살기좋은 세상을…
1991년 올해는 신미년(辛未年) 양(羊)띠 해이다. 단군이래 양띠해로는 3백 60번째, 신미(辛未)년으로서는 72번째를 맞는 해가 올해이다. 지난 과거의 신미년에는 변화와 시련이 많았다.

371년 신미년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이 벌어져 고국원왕이 전사하고 소수림왕이 제17대 임금으로 즉위, 고구려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해였고, 1271년 신미년은 원이 고려왕조를 핍박, 급기야 항몽 결사단체인 삼별초의 근거지 진도를 함락한 해였으며, 1631년 신미년은 선진문물인 천리경, 자명종시계를 사신 정두원이 명나라에서 들어와 충격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해였고, 1811년 신미년에는 농민반란인 홍경래의 난이 일났었으며, 1871년 조선시대 말기 신미년에는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펼쳐짐과 동시에 미국군함이 강화도를 침범, 신미양오사건이 일어났었고, 끝으로 지난 신미년인 1931년은 일제 치하에서의 우리민족 민간단체인 신간회가 해체되고 한·중 민족간의 대립으로 발전하는 만보산사건과 일본 군국주의가 여실히 드러난 만주사변이 발발된 해였다.

과연 금년 1991년 신미년에는 어떤 변화가 다가설지 자못 궁금하다. 본래 우리나라에는 양이 없었다. 소처럼 '음매애∼'하고 우는 데다 수염이 있어 '염소'라 불리워졌다는 양의 사촌격인 염소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양띠를 염소띠라고도 부른다. 조그마한 몸집에 갸날픈 소울음 소리를 내는 것이, 수염만 점잖게 붙이고 제 고집만 내세우는 염소인지라.

품위와 체통을 따지는 우리네 인습으로서는 아무리 잘 봐 줄래도 좋게 봐줄 수 없는 그런 축생(畜生)에 불과했다. 서양의 면양이나 목양, 산양과 같이 멋드러진 뿔과 품위있는 털, 순박한 눈빛을 갖고 있지 못해서 위엄이나 품위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염소였던 것이다. 염소가 담배를 먹는다든가, 고집이 세다든가, 염소 물똥 싸는 것 보았느냐는 민간 덕담에서 보듯, 염소는 왜소한 몸집의 촌부가 양반흉내를 내려다 망신만 당하는 것처럼 같잖은 행동과 고집스런 성격의 평범한 동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염소가 아닌 양(羊)에 얽힌 이야기도 아주 없지는 않다. 전남 장성에 있는 백암사(白巖寺)는 본시 절 뒷산에 흰 바위가 있어 백암사(白巖寺)라 이름하였었다고 한다. 이 백암봉 아래의 암자에는 훌륭한 독경(讀經)으로 유명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 스님의 독경을 경청하는 제자들중에 특이한 무리가 끼어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일곱 마리의 백양(白羊)이었다는 것이다. 이 백양들은 스님의 독경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무릎을 꿇고 앉아 독경을 경청하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의 꿈속에 나타나 "우리는 스님의 독경에 힘입어 이제 축생(畜生)의 몸을 벗어나 사람으로 환생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스님이 뒷산에 가보니 일곱 마리의 백양이 죽어있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백안사는 백양사(白羊寺)로 불리워졌다고 한다. 또한 세종대왕과 관련된 일화도 있다. 세종대왕이 계속 갈증을 느끼는 병에 걸렸을 때 시의(時醫)가 양을 잡아 약을 하자는 진언을 올리자 세종대왕을 "우리나라에도 없다가 겨우 기르는 양일진데, 내 병을 고치려고 그 생명을 해한다면 이는 곧 죄가 되지 않겠느냐"며 거절한 바 있다고 전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도 양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 듯 하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양을 본다는 것은 그리 흔치않은 일이어서,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 그 생김새를 알 따름이다.

다만 양이 우리와 친숙한 것은 기독교의 기하급수적인 확산에 그 영향을 크게 받은 때문으로, 잃어버린 양 한 마리와 선한 목자(牧者)의 성경이야기는 기독교 신자는 물론 비신자까지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대단위 면양 사육목장은 세 곳뿐이다. 2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호주와 뉴질랜드를 다녀온 후부터 면양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길러지기 시작했는데, 20여년이라는 연륜에도 불구하고 전북 남원 지리산 기슭에 있는 운봉목장과 제주도 이시돌 목장, 강원도 예수원 목장의 세 곳에서 면양을 사육하고 있다.

비탈진 산지에 풀어놓고 기르기 때문에 생산비도 적게 드는데다, 군집력이 좋고 무척 순해서 잘 길들여진 개 1마리면 5백 마리까지 기를 수 있다는 면양은 그 털과, 고기, 기름 등 버릴 것이 하나 없다. 해마다 4만톤 이상의 면양고기와 30톤씩의 양털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의 실정을 감안할 때, 면양사육은 최소한 5억 달러 이상의 외화절감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효과적인 UR대체작목인 것이다. 그러나 국내 양모 가공시설의 미비와 비육우·젖소 사육에 비해 수입이 적어, 그나마도 사양길에 접어든 것이 면양사업이다. 양은 착하고 부지런하며, 무리를 지어 다닌다.

사회의 한 구성원인 인간은 서로 제잘난 맛에 티격태격하기 일쑤이나, 양들은 나름대로의 질서 체계를 굳건히 하여 이탈하는 경우가 없어 무척 순종적이고 질서 있는 공동체 생활을 한다. 그 군집성이 굳은 단결력을 상징하듯 양이 무리를 지어 들판을 장식하면, 마치 푸른 하늘을 그대로 초원위에 옮겨다 놓은 것처럼 두리뭉실하고 큼직한 구름으로 보인다. 한떼의 구름이 푸른 하늘을 떠나 초록빛 대지위에 낮게 내려앉아 미끄럼타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한편, 양은 온순하기만한 성격과는 달리 매우 재미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더운 여름에는 서로 꼭꼭 붙어서 자지만 추운 겨울에는 제각기 떨어져 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띠인 사람은 세심하고 성실하며 의리심이 강하나 불필요한 고집이 센게 흠이라면 흠이라고 1991년 신미년 올해는 순박하고 봉사와 희생, 헌신할 줄 아는 양처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하여, 우리군민 더 나아가 온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부단히 노력하여, 양들이 편히 뛰노는 초원처럼 보다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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