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꽃, 보은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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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꽃, 보은의 꽃
  • 김종례 (문학인)
  • 승인 2023.04.20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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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목에서도 꽃을 피울 것만 같은 꽃바람을 ~ 삭정이에서도 새잎이 돋을 것만 같은 잎 바람을 만나는 4월이다. 그 바람이 몸살을 앓으며 화려한 울음을 붉게 토해내며, 천지를 물들이는 꿈을 꾸었나 보다. 고개를 가만히 들기만 하여도 살짝 돌리기만 하여도, 여기저기 꽃무더기 궁전을 지어놓고 오라오라 하는 4월이다. 해마다 꽃들이 피는 순서는 수학공식처럼 정해져 있는 줄로 알았는데, 올해는 어찌된 기후의 조화인지 보은의 꽃들에도 이변이 일어났다.
  눈 속에서도 핀다는 매화와 3월의 전령사 산수유가 다녀간 후에, 벚꽃보다도 먼저 피어난 진달래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촛불처럼 나오던 목련 꽃봉오리는 영하 새벽에 냉해를 입고는, 타다 남은 벨테르의 편지처럼 후기만 쓰고 말았다. 용천산 아래 조팝꽃길이 또 하나의 길을 환하게 밝혀주며 손짓을 해대는 요즘이다. 
  며칠 전에는 장안리 취회지를 비롯하여 동학공원, 뱃들 공원에서 제18회 동학제가 열렸다. 몇 년 전에 속리초 운동장에서 낭송하였던 창작시‘장내리 진달래’가 진홍빛 음률로 다가오는 봄이다.‘오봉산 골짝마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꽃망울들 장내리 언덕마다 붉은 모닥불로 다시 피누나. 엄동설한 동토를 깨우는 동학의 울부짖음에 선뜻 온 몸을 내어주곤, 해마다 선명한 혈흔을 붉디붉게 토해내는 동학의 혼불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연분홍 저고리만 걸치고 교태까지 부렸을까! 망령 든 꽃샘추위 얼싸안고 뜬눈으로 지새우던 불면의 밤, 신열에 곰삭이고 흔들리다 만신창이가 되어 떨어지는 선열의 넋이다. 잎도 없이 피었다 가는 너 ~ 숙명의 두견화 진달래여.’진달래는 우리 고장 동학군의 넋과 혼을 대변해 주는 보은의 꽃이라 해도 좋겠다. 이런 의미에서 동학공원에 붉은 진달래가 많이 피었으면 하는 바람은 늘 간절하다.
  또한 군민에게 주어진 보청천 벚꽃길도 얼마나 아름다운 4월의 선물인가. 열흘 전쯤에는 뱃들공원에서 벚꽃 길 축제가 열렸었지만, 기후관계로 꽃비가 내린 후였다. 나는 일찌감치 개화의 절정점에서 벚꽃길을 걷는 행운의 시간을 가졌다. 지인 몇 명이 수다를 떨며 꽃길로 진입하니, 상아빛 웃음을 날리며 초면수작을 걸어오는 꽃길이다. 안개 이불속에서 까르륵거리다가 이내 들켜버린 내숭의 신부라 할까? 부끄러운 속살을 간신히 여미고 이승에 마실 온 새아씨 얼굴이 저리도 어여쁠까 ~ 만개의 기쁨에 하루해가 취한 채 저물어 가면, 한해의 소망을 꽃비로 화답하며 하늘로 돌아가는 잠시의 몽환이다. 알맞은 언어구사 능력이 아쉽기만 한 환상적인 꽃길에서 잠시잠깐 세상사도 잊어버렸던 한나절이다. 저들만의 하늘언어가 또 하나의 소망으로 날아오르는 벚꽃 길 십리 길은 잔칫날이다. 나무마다 가지마다 소원의 호롱불을 별처럼 걸어놓고 오라고 손짓하건만, 사람들은 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손님이 적어서 애석한 잔칫날이다. 해마다 적정시기에 보청천 벚꽃길 축제가 정례화 되어서, 아름다운 꽃길이 잔칫날처럼 성황을 이루었으면 하는 기원이다.    
  오늘은 참을성 없는 봄바람 열두 가닥이 드디어 꽃비를 뿌리는 중이다. 세월을 재촉하는 듯이 계절을 낚으며 애처로이 바람꽃을 휘날린다. 인생비가 내리기 전에 누구인가의 가슴에 꽃으로 피어날 순간을 준비하라는 교훈을 배운다. 잠시잠깐 피었다가 져버리는 한해살이 꽃이나 풀꽃에 비유되는 인생의 꽃! 혹독한 겨울의 들판을 맨몸으로 견뎌내며 간신히 목숨만을 부지해야 하는 풀꽃이다. 민초의 삶은 언덕배기 낮은 곳에서 숨죽이며 피어있는 한 떨기 작은 풀꽃이리라. 
  그러나 삶이 팍팍하고 힘들 적마다 꽃잎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노라면,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어 새로운 길이 보일 때가 많다. 꽃은 피었다가 금새 꽃비로 흩어지며 갈피를 잡지 못하나, 우리는 한 송이 꽃이 되고 시인이 되어 아름다운 계절의 강을 건너야 할 것이다. 붉은 빛으로 함뿍 가슴을 물들이거나, 우여곡절 가슴 아린 꽃비가 되기도 하며,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나를 허당으로 빠트렸던 기억속의 사람들도 용서가 되고, 아픈 기억은 꽃비가 되고 강물이 되어 흐르는 봄이기 때문이다. 세상사 온갖 시름들을 꽃비처럼 훨훨 날려 보내고. 꽃같이 웃어보라고 하늘이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혹여 지금 인생의 꽃샘바람에 흔들리며 시달리고 계시다면, 곧 아름다운 꽃이 다시 피리라는 소망을 잃지 마시기를~  불모지 내 마음 밭에도 보은의 꽃 이야기가 이다지도 붉으니 ~ 아. 다시 찾아 온 4월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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