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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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드라마
  • 김옥란
  • 승인 2022.08.2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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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버지의 친구인 발전소 소장 댁에서 저녁 드라마 <여로>를 보고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오곤 하셨다. 발전소는 법주사 앞, 세조길 진입로에 있었다. 그 발전소는 그 시절에 내가 호수라 불리는 소나무 저수지의 물로 발전기를 돌려 속리산 사람들의 식수를 제공하는 일을 했다. 발전소 앞에 있는 발전소 사택은 우리 아버지의 <여로> 보는 극장이었던 셈이었다.
산장에서 발전소까지는 산길이 3킬로미터 좀 더 되는 길이었고, 겨울이면 호랑이와 커다란 짐승들의 발자국이 눈밭 여기저기 찍혀 있는데, 아버지는 장을 보러 가시면 발전소 사택에서 꼭 <여로>를 보고 올라오셨다. 때론 달빛을 받으며, 때론 손수 만드신 횃불로 밤길을 밝히며 걸어 올라오셨다.
그 무렵의 여름 어느 날 탤런트 ‘신구’ 선생님이 기다린 생머리 여인과 함께 우리 산장에 왔다. 그 부부는 놀이터 평상에서 점심을 먹고 갔다. 아버지가 신구선생님을 무언가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아서 아직 아기인 동생과 나는 그들이 갈 때 세심정 가는 길 중간까지 졸졸졸 따라 내려갔다. 아기들 둘이 졸졸졸 따라 내려오니 신구씨 부부는 얼마나 이상했을까? 올라가라 해도 안 올라가고 쪼끄만 꼬맹이 두 아이가 서로 손을 꼭 잡고 말없이 계속 따라 내려오니 신구 선생 부부는 조금 난감하였을까? 상환암 갈림길 위에서 지갑을 꺼내어 종이돈 한 장씩을 손에 꼬옥 쥐어주며 어서 올라가라고 했다. 그때 나는 ‘아저씨가 왜 우리한테 돈을 줄까?’ 의아했던 것이 지금도 생각난다. 나는 그가 탤런트 신구라는 사실을 커서 TV를 보고 알았다.
삶은 드라마다. 드라마는 삶을 담는다. 삶을 표현한다.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역지사지의 심정도 되어보고, 주인공 시점도 되어보고, 전지적 관찰자 시점도 되어보며 몰입한다. 드라마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못 이룬 꿈에 대한 대리만족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요즈음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잘 보았다. 내가 이 드라마에 푸욱 빠진 것을 본 내 동생 김화백도 이 드라마를 다아 보았다. 나는 2년 전에는 <사랑의 불시착>을 깊이 빠져서 보았는데, 이번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잘 본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교훈과 재미와 유익과 감동을 모두 주는 드라마로, 동화처럼 맑고 순수한 결말은 해피엔딩이어서 더 좋았다.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주신 작가와 감독과 탤런트 여러분, 고래들, 팽나무, 우영우 김밥집,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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