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실 선생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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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실 선생님의 추억
  • 김옥란 
  • 승인 2022.08.1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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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추억은 재산이다. 좋은 추억이 많은 사람은 재산이 많은 사람이다. 이 추억재산을 많이 소유한 사람은 세상을 멋있고 여유롭고 조화롭게 살아간다.
며칠 전, 고상하고 아름다운 중년 여성 두 분이 우리 산장에 오셨다. 서울에서 온 그녀들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들 중 한 선생님은 산장에 대한 추억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여름방학을 맞아서 속리산 산골짜기에 있는 우리 산장을 찾아왔노라고 했다.
“교사로 발령받아 온 첫 근무지가 보은여중이었어요. 여중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쳤지요. 취미가 속리산 등산이었어요. 그래서 등산을 좋아하는 몇 명의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늘 속리산을 찾아 등산했습니다.
하루의 수업을 마무리한 어느 날 저녁 다섯 시였어요. 그날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산장까지만이라도 꼭 왔다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산장에 왔답니다. 할머니가 해주신 비빔밥으로 저녁을 먹고 나니 산장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할머니께서 양초와 신문지를 가지고 저희에게로 나오셨어요. 신문지를 바닥에 펴놓고 그 위에 양초를 올려놓으시더니 둘둘둘 말으시는거예요. 그리고 그 신문지양초에 불을 밝히셨어요. 할머니는 그것을 저희에게 건네주셨어요. 그 신문지양초 불 오래 가던데요. 어두워진 산길을 신문지양초 불 덕에 내려올 수 있었어요.
보은여중도, 보은여중 제자들과 동료 선생님들도, 속리산도, 비로산장도, 비로산장 할머니의 밥과 친절한 미소와 신문지 촛불도 모두 그리운 추억이랍니다. 아마도 첫정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결혼하며 보은여중을 떠나가게 되었다는 그 여선생님은 나이가 지금 쉰다섯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때 그 시절 보은여중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선생님들과 사랑하는 제자들이 어디서 어떤 모습들로 사는지 몹시 그립고 보고 싶다는 그 선생님이 우리 산장 방명록에 쓴 글을 허락을 받아 이 지면에 대략 옮겨본다.
ㅡ 92년 나의 첫 발령지 보은여중. 2022년 7월 <추억여행>으로 속리산 세조길을 걸어 비로산장에 왔다. 30년 전에 퇴근 후 이곳 비로산장에서 할머니가 해주신 저녁을 먹고 아궁이에서 신문지에 초를 말아 깜깜해진 산을 내려갈 수 있게 해주신 먼일들이 기억난다. 나의 기억 속에 있는 할머니의 모습과 아름다웠던 옛길, 시원하게 들리는 물소리. 그 시절 그 순간이 그리웁다. 다시 나는 이 산을 내려간다. ㅡ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보은여중에 재직했던 ‘홍성실’ 선생님이 그 시절을 함께 보낸 동료 선생님들과 제자들을 꼭 다시 만나게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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