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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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 김옥란
  • 승인 2022.06.2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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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버지의 여동생이 흙으로 돌아가셨다. 요양원에서. 그분의 조카인 나는 애달파하다가, 9년 전 우리 아버지께 작별인사 드리던 일을 일기장을 들추며 회상해 본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버지의 오줌주머니는 텅 비어있었다. 아버지 담당의사 박선생은 긴박하게 여러 검사를 하더니, 나를 진료실로 불렀다. “폐렴이 심하시네요. 콩팥 기능도 다했구요. 1주일 정도 남으셨어요. 빠르면 오늘내일 가실 수도 있죠.”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아버지의 임종, 그것은 아버지와 우리 가족이 작별하는 순간이다. 난 무엇을 해야 하지? 어떤 일을 해야 하지? 읍내에 있는 그 병원 1인실은 아버지가 싫어하셨다. 나는 우리 가족만 있는 넓고 쾌적하고 좋은 장소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한, 멀리 있는 우리 가족들이 빨리 달려올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주로 모시고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려면 나는 돈이 필요했다. 1년여 동안 아버지 간병만 했던 터라 내 수중에는 돈이 없었다. 다급히 서울의 혜원언니한테 전화했더니 고맙게도 통장으로 백만원을 즉시 보내왔다. 
이제, 엄마가 계셨던 도시의 병원에 전화해서 특실이 있는지 문의했다. 평생 산골에서 고생하셨으니 떠나실 때 좋은 장소에서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에 특실로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서 지금 아버지를 모시고 청주 모 병원 특실로 가겠다고 박선생에게 말했다.
“이곳 중환자실에 아버지와 두 달 있었어요. 그동안 환자 임종을 네 번 보았어요. 다른 환자들에게 미안해서 가족들은 울지도 못하더군요. 우리 가족만 모인 장소에서 아버지께 작별인사 드리려구요.”
소견서를 받아서 앰블런스에 아버지를 모시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아버지는 어딜 가느냐고 희미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나는 엄마 계셨던 병원에 간다고 했다. 낮 11시쯤 도착하였다. 응급실 의사는 “하루이틀 남으셨네요. 폐렴이 너무 심하시고요. 혼수상태가 오려 하고, 심장마비가 올 수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우리 가족들에게 전화로 사실을 전달했다. 그날 저녁에 모두 먼 곳에서 달려왔다. 먼저 큰오빠와 막내오빠가 함께 도착했다.
나는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올리라고 했다.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몰라 아버지 앞에 그냥 서 있는 오빠들에게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말씀드리라고 코치했다. 떠나가시는 93세 아버지 앞에서 칠순의 큰오빠, 평생 부모님의 사랑은 동생들에게 다 빼앗기고 장남의 책임과 의무에 힘겨웠던 큰오빠는 얼굴이 복잡해지더니 울먹이듯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했다. 
그러자 산소호흡기를 끼고 여린 숨을 몰아쉬고 누워계시던 아버지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마음속으로 장남을 제일 많이 사랑하고 의지하셨던 아버지. 아버지도 그 순간 ‘장남, 고마웠어. 사랑한다.’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다음 차례로 막내오빠가 장난스레 웃으며 “아버지, 사랑합니다.”를 우렁차게 다섯 번 연거푸 외쳤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차례로 모두 아버지께 작별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버지는 떠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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