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순수했던 날
상태바
수상순수했던 날
  • 보은신문
  • 승인 2002.12.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완기(음악인, 시인)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를 좋아한다. 병과도 보직도 근무지도 다르고, 힘든 날도 많았건만 한결같이 아름다운 추억, 자랑스러웠던 과거로 이야기한다. 나는 모 방송국의 ‘신고합니다’프로를 좋아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훈련을 통해 막강한 군인으로 태어나 조국을 지키는 모습이 여간 든든하고 고마운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군이 조국을 지키기 못한다면 우리도 굶주림을 못 이겨 목숨걸고 중국 땅을 떠도는 탈북 주민의 신세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군대에는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는 전우애가 있어 좋다.
40년 전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배출대로 넘어온 나는 다른 병사들과 함께 불려나와 트럭을 탔다. 제일 먼저 불렸으니 좋은 곳으로 갈지 모른다는 기대감 속에 산속으로 산속으로 실려갔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하사관교육대(일명 하교대)’라는 곳이었다. ‘하교대!’. 훈련소에서 하교대로 교육 차출된 조교가 몹시 두려워하던 모습을 보았기에 우리는 꽁꽁 얼어 붙었다.
하교대 조교 중 민하사는 자칭 ‘죽음의 사자’로 불리며 깡마른 체구에, 독수리같이 매서운 눈빛이 우리들을 주눅들게 했다. 어느 날 밤 고된 훈련 후 깊은 잠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비상!”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유도 모른채 ‘원산폭격’기합이 시작되었다.

얼마 후 고통을 못이긴 전우들이 여기 저기서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민하사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화단에 소변 본 놈이 누구야? 자진해서 뒷다리를 들어!” 우리는 그제야 영문을 알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죽음의 사자 앞에 자백할 리가 만무했다. 얼마 후 “이제 그만, 취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날 밤부터 중도에 퇴교를 당하고 최전방으로 쫓겨가 고생할 꿈만 꾸며 초조하게 하루 하루를 보냈다. 2주 훈련을 마치고 수료식을 하는 날 아침 민하사가 나를 찾았다.

“야, 김이병, 왜 나를 속였어. 소변 본 녀석 박이병이 다음 날 나한테 찾아와 용서를 빌어서 알았다. 날속였으니 영창감이지만 전우들을 위해 네가 대신 십자가를 지겠다고 했으니 특별히 용서한다. 군 생활 멋지게 잘 해라” 전우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십자가를 지겠다고 나섰던 내가 그 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짊어지웠을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얼마나 변질되었을까? 순수했던 그 때로 돌아가야겠다. 대한 국군들이여, 피끓는 순수함으로 조국을 지켜다오. 그대의 부모형제를 지켜다오.


※ 속리초·보덕중·대전사범·경희대 교육대학원 졸업
·한국관악협회 자문위원/ 대한민국관악상 수상
·시집 ‘구름 그리고 그림자’/ 제1회 해동문학상


<정이품송>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