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장화와 여름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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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장화와 여름고무신
  • 김옥란
  • 승인 2022.05.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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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서 신을 사 왔다. 초록장화 한 켤레와 여름고무신 두 켤레였다. 마음에 드는 신을 샀더니 즐겁다. 비싼 물건도 아닌데 이렇게 신나다니 신기하다. 그러기에 신인가?
초록장화를 살 때 가게 주인은 이 장화는 패션을 위한 장화입니다, 라고 일러주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이 패션의 완성을 위한 초록장화를 벌써 몇 번 신어보았다. 동생에게 초록장화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초록장화는 신으면 발이 무척 편안했다. 장화이니 비 오는 날만 신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장화는 나에게 그 쓰임새가 훨씬 다양하다.
나에게 장화는 ‘힐링신’이다. 편안하게 걷고 싶을 때 나는 장화를 신는다. 그러면 약간은 헐렁한 장화 속에서 나의 발은 자유롭다. 마치 집에서 마음의 긴장을 풀고 느긋이 쉴 때 입고 있는 낡고 헐렁한 셔츠처럼 장화는 힐링을 준다.
장화는 비 올 때 신는 ‘비신’이다. 우중에 빗물로부터 사람을 지켜주는 것, 이것은 장화 본연의 임무이다. 그런데 비 오는 날의 레인코트와 레인슈즈는 촌사람인 나에게는 아직도 생소하여 먼 이국의 아름다운 영화 속 장면이 먼저 연상된다. 하지만, 이 초록장화는 비 오는 날 열심히 신어도 될 것만 같다. 보통의 장화보다 약간 더 고급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럽다. 이 초록장화를 비 내리는 날 신으면 장화는 나를 비로부터도 지켜주면서 아주 살짝 나를 돋보이게 하는 ‘패션신’이 되어주기도 할까?
장화는 일할 때 신는 ‘일신’으로도 그만이다.
일을 할 때 장화를 신으면 전쟁터에 나간 군사가 좋은 군화를 신고 있는 것처럼일까? 일에 대해 용기와 자신감도 생기고 든든하다. 그래서 나는 장화를 신고 일하기를 좋아한다. 장화를 신고서 대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또 쓴다. 오고 가는 미지(未知)의 행인들이 안녕하길 빌며 산길을 쓸기도 한다. 지들 세상인 듯 마구 올라오는 무법의 풀들을 호미로 거두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내가 종횡무진으로 일을 할 때 장화는 내 발을 보호해준다. 뾰죽한 돌이나 나뭇가지에 혹여 다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장화는 우직하게 내 발의 지킴이가 되어준다.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껏 장화 예찬만 늘어놓은 것인가? 고무신들에게 문득 미안해진다. 고무신! 고무신은 이번 여름에 언제나, 늘, 허물없이 마음을 나눌 소박하고 정겨운 친구들이다. 초록장화와 여름고무신으로 나는 오랫동안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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