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길
상태바
봄길
  • 김옥란
  • 승인 2022.04.28 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은 수채화다.
산과 수풀을 바라보면 누군가 연녹색 물감과 연분홍 물감을 슬쩍 터치했다. 여리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옅은 분홍, 옅은 연두색의 붓 터치들은 여기저기 끝도 없이 펼쳐진다. ‘수채화 봄’이 끝없이 펼쳐지는 것이다. 
동생과 나는 ‘수채화 봄’으로 들어가서 십리 길을 걷기로 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마을에 있는 학교에 다니던 50년 전 이맘때로 돌아간 듯 재잘거리며 걸었다.
그 시절, 우리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바로 이 시간쯤, 이렇게 지금처럼, 집에 걸어 올라가곤 했다. 마을에서 일주문을 지나, 법주사가 보이는 오리숲에서 산길로 접어들어서 걷는다.
여기 이 왼편에 발전소가 있었어. 길 오른편인 이곳이 발전소 사택이었어. 사택에는 우리와 함께 학교 다니는 재숙언니가 있었어. 우리는 늘 여기서 한참동안 놀다가 집에 가곤 했어. 재숙언니, 양숙언니도 보고 싶다. 그런 이야기를 동생과 하며 또 봄길을 우리는 걸어 올라간다.
우리가 호수라고 부르는 저수지가 나타난다. 저수지 발치에서 우리는 또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 오른쪽에 하꼬방 같은 매점 하나가 있었어. 그리고 우리는 저수지 중간쯤까지 걸어올라간다. 저수지 중간쯤에서 우리는 멈추어 서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여기 이 저수지 물가에 하꼬방 같은 매점 세 개가 있었어. 가운뎃집이었던가? 신씨 아저씨네 매점이었어. 여기에 우리랑 함께 학교 다니던 세 자매가 있었어. 그 중 기숙언니 이름만 기억나네? 다른 얼굴들도 기억은 나는데 이름이 생각 안 난다. 여기서도 우리는 날마다 한참을 놀다가 집으로 올라갔는데. 여기가 우리의 참새방앗간이었는데. 모두 어디서 잘 살겠지? 보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지금은 그 집터에 통나무 의자들만 몇 개 놓여있는 모습을 옛날을 회상하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서 걸어 올라간다. 저수지 위쯤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얼마만큼 걸어올라가면 또 하꼬방 같은 매점이 나왔다.
그 매점을 지나고, 큰길을 계속 걸어 올라가면 <목욕소>가 보인다. 세조가 목욕했다는 <목욕소> 앞에도 길 왼편에 하꼬방 같은 매점 하나가 고즈넉이 앉아있었다. 그쯤 걸어 올라가면 저만치 아버지나 군대 갔다가 마악 제대한 큰오빠가 “야호~” 하고 우리를 부르며 마중 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 우리도 “야호~” 하고 대답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요즈음 문득문득 그 옛날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수채화 봄날이다. 모두 살기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서로 아껴주던 다정한 산골 이웃들이 어디서든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