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등불 앞에 몸을 숨기는구나[1] : 除夜有感 / 소파 오효원 (여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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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등불 앞에 몸을 숨기는구나[1] : 除夜有感 / 소파 오효원 (여류시인)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7.06.29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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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4】
섣달 그믐날밤이면 마음이 설렌다. 때때옷도 입고 세뱃돈도 받는다. 선현들은 이를 [제석(除夕)]이라고 하여 큰 명절의 하나로 여겼다. 시인은 제석을 보내기 위해 폭죽을 터뜨리는 폭죽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설레는데 언니들은 새 옷을 다림이질하면서 불러댄다. 계절적으로 섣달그믐이지만 아직도 추위는 맹위를 떨친다. 그렇지만 시인이 보는 눈에는 깜박거리는 등잔불 앞에 추위가 몸을 숨긴다고 읊었던 율시 전구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이슥한 밤이 되어 폭죽 소리 드높고
새 옷 입은 언니들 연이어서 부르네요
봄 아직 먼 줄 알았더니, 등잔 밑에 숨는 추위.
爆竹聲高殘漏永 連呼姐姐板新衣
폭죽성고잔루영 연호저저판신의
春從雪後深深見 寒殄燈前落落微
춘종설후심심견 한진등전낙낙미

추위가 등불 앞에 몸을 숨기는구나(除夜有感)으로 번역되는 율(律)의 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소파(小坡) 오효원(吳孝媛1889∼?)으로 개화기의 여류문인이며 외교가로도 활동했다. 초명 덕원이었으나 바꾸어 효원으로 했고 의성 출생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밤도 이슥한지 오래건만 폭죽소리 드높고 / 새 옷 다리는 언니들이 연이어 부르고 있네 // 눈 온 뒤로 봄 아직도 먼 줄 알았더니 / 추위가 등불 앞에 몸을 숨기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섣달 그믐날 밤의 느낌]으로 번역된다. 소파는 9세 때부터 남자복장을 하고 글방(社塾)에 다녔으며 얼마 안가서 시를 지을 줄 알았다. 준수한 이마와 둥근 귀, 네모지고 꽉 다문 입술 등 용모부터가 그러했다고 한다. 타고난 기질부터가 여인네들이 하는 일보다는 남자들이 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인은 섣달 그믐날이면 어김없이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는데 이 종소를 듣고 있다. 종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에서 폭죽 소리가 들리고 언니들은 벌써 새 옷을 다리는 분주한 모습을 보게 된다.
화자는 겨울이 아직 먼 줄만 알았는데, 매서웠던 추위가 등불 앞에 몸을 숨긴다는 기발한 착상을 한다. 깊은 문학적 상상력을 보게 된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매화나무 아래 스며든 봄 밤을 따라 움직이고 / 차 주변의 어릴 적 꿈 연기 따라 사라지네 // 칠 푼은 번뇌요 세 푼은 근심걱정이러니 / 내일 아침에는 허리둘레 한 움큼 줄겠네]라고 했다. 새해가 되면 번뇌와 근심 때문에 허리둘레가 한 움큼 쯤은 줄어 들 것이라고 했다.
【한자와 어구】
爆竹聲: 폭죽소리 터진다. 高殘漏永: 밤도 이슥하다. 連呼: 연이서 부른다. 姐姐: 누이들. 여기선 언니들. 板新衣: 새 옷을 다르질하다. // 春: 봄. 從雪後: 눈이 온 뒤에. 深深見: 깊이 깊이 보이다. 먼 줄을 알다. 寒殄燈前: 추위가 등불 앞에 꺼진다. 落落微: 떨어져 희미하다. 곧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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